7. 천천히도 충분하다

by 정연

7. 천천히도 충분하다


그때 내 나이 서른일곱.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느낄 줄은 몰랐다. 이미 이뤄둔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도서관 데스크에 앉아 책을 정리하고 이용자를 맞이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내 마음을 이상하게 뛰게 만들었다. 왜 매번 다니던 도서관에서 본 익숙한 장면이, 그날따라 그렇게 다르게 보였을까.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까?”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스쳤다. 하지만 곧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밀려왔다. 마치 오래된 땅속에서 샘물이 솟구치듯, 근거 없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무작정 인터넷 창을 열고 “사서 되는 법”을 검색했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사서’는 단순했다. 서적을 맡아보는 직분.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는 “도서관에서 대출·반납을 맡는 사람”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그 이상은 잘 몰랐다. 하지만 막상 알아보니, 사서는 단순히 책을 빌려주고 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정보의 흐름을 정리하고, 사람과 지식을 연결해 주는 일.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부동산 대학원을 졸업한 뒤 증권회사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다. 숫자와 보고서에 둘러싸여 살아온 삶이었다. 하지만 사서가 되려면 필수 요건이 있었다. 바로 사서 자격증. 그래서 성균관대학교 사서교육원에 지원했다. 1년 과정이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자격을 갖추고 도서관 현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 낮에는 증권회사에서 근무하고, 저녁에는 교육원에서 공부하는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아직도 첫 수업이 생생하다. 주제는 데이터베이스 이론. 그곳에서 처음 ‘쿼리(Query)’라는 단어를 접했다. 명령문을 작성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방식은, 처음에는 도서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왜 도서관에서 이런 걸 배워야 하지?” 고개가 갸웃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도서관은 더 이상 단순히 책이 꽂힌 공간이 아니었다. 거대한 정보의 흐름을 관리하고, 이용자들이 원하는 답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곳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도서관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흥미로웠던 건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었다. 나이 지긋한 분은 은퇴 후 제2의 생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사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 왔다. 또 다른 이는 나처럼 커리어를 바꾸어 도서관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목표를 향해 공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치열한 경쟁과 성과에 매달리던 증권회사의 공기와는 전혀 달랐다. 부드럽고, 차분하면서도 묘한 연대감이 있었다.


특히 내년에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한 분이 인상 깊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늦었을지 몰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려 합니다.” 그 말이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서른일곱이라는 나이가 늦었다고 생각하며 망설이던 나에게, 그분은 거울 같은 존재였다. 오히려 나는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 천천히 해도 괜찮아.”


사서라는 길은 여전히 낯설고, 불확실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설렘이 있었다. 답을 찾기 위해 책을 펼쳤던 내가, 이제는 그 책들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건네는 길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 설렘은 오히려 나를 살아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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