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책이 가르쳐준 단순한 진리

by 정연

8. 책이 가르쳐준 단순한 진리


증권사 시절의 나는 늘 복잡함 속에 살았다. 하루하루가 보고서와 성과 지표로 가득 차 있었다. 회의 때마다 이번 달 실적이 얼마일지, 진행 상황은 어떤지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한 해의 목표치, 분기별 실적의 흐름이 나를 옥죄고 있었지만,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쫓아갔다. 회의실에서 오가는 말 대부분은 전략, 성과, 지표였다. 숫자는 언제나 정확했고 냉정했다. 그래서 나는 그 숫자들을 붙들며 더 나은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복잡할수록 뭔가 있어 보였고, 정교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었다. 사실 그날 나는 무거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 간 참이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답답했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걷다가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아 페이지를 넘기던 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덜 가지면 더 많이 누린다.”


나는 그 문장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단순한 구절이었지만,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지금껏 나는 더 많이 가지려 애썼다. 더 큰 성과, 더 많은 인정, 더 두꺼운 보고서. 그러나 그 모든 ‘많음’이 오히려 나를 무겁게 하고 있었다. 내가 지쳐가는 이유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함이야말로 내가 놓치고 있던 답이었다.


책 한 권이 아니라, 문장 한 줄이 삶의 방향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증권회사에서는 성과와 전략이라는 복잡함 속에서 길을 찾으려 했지만, 도서관에서 마주한 한 문장은 정반대의 길을 보여주었다. 복잡함보다 단순함이, 많음보다 덜 가짐이 더 깊고 오래가는 만족을 준다는 진리였다.


사서교육원 과정을 마치고 대학 도서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 진리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거창한 전략이나 복잡한 계산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꾸준히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단순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그 단순함 속에 오히려 본질이 있었다. 이용자가 찾는 책을 제자리에 두고, 질문에 성심껏 답하며, 낡은 책을 정리하는 일. 하나하나 작은 일이 모여 도서관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 단순함이 주는 평온함을 알게 되었다. 성과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쫓던 삶과 달리, 도서관에서는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만족을 느꼈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해도 괜찮았다. 오히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사람과 지식이 연결되는 순간, 깊은 보람이 있었다.


사실 단순함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강조해 온 진리였다. 불교에서는 무소유를 이야기했고, 간디는 소박한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하게 사는 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화려함은 잠시 눈길을 끌지만, 오래 남는 것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임을 우리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화려한 복잡함이 아니라 소박한 단순함이라는 것을. 단순한 진리가 세상을 버티게 한다는 것을.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 애쓰고 있지 않은가? 더 큰 성과, 더 많은 인정, 더 빽빽한 일정표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그 ‘많음’이 오히려 당신을 무겁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은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삶은 단순해도 충분하다고.

아니, 단순할 때 비로소 충분해진다고.


“다음 글: 〈오래 남는 건 성과가 아니라 관계〉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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