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결국, 남는 건 태도다
20. 결국, 남는 건 태도다
직함도, 연봉도, 성과도 시간이 지나면 빛을 잃는다. 증권사에서 일할 때의 화려한 순간들은 이제 희미하다. 회식 자리에서의 건배사, 분기 실적을 달성했을 때의 환호…. 그때는 모두 눈부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은 뿌옇게 흐려져 있다. 대신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따로 있다. 내가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는지, 그 흔적들이다.
증권사 시절, 한 번은 밤늦게까지 보고서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던 날이 있었다. 건물의 불은 거의 꺼져 있었고, 남아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때 함께 일하던 동료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향해 짧게 말했다.
“오늘 고생 많았어. 먼저 들어가.”
그 말은 그날의 피로를 단숨에 덜어내 주었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상사의 재촉에 쫓기던 하루였지만, 결국 내 마음에 남은 건 숫자가 아니라 동료의 태도였다. 보고서의 내용은 금세 잊혔지만, 피곤한 얼굴에 묻어난 따뜻한 말투는 아직도 또렷하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성과는 기록 속에 묻히지만, 태도는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학생들이 기억하는 건 내가 얼마나 빨리 일을 처리했는지가 아니었다. 어느 날, 도서관 문을 닫기 직전 한 학생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반납 기한을 넘길까 봐 불안한 눈빛이 역력했다. 나는 서두르는 학생의 손에서 책을 받아 반납 처리 버튼을 눌러 주며 웃었다.
“괜찮아요, 시간 안에 오셨어요.”
그 학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것은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일이었지만, 그 순간 학생에게 남은 건 규정이나 절차가 아니라 내가 보여준 태도일 것이다.
또 다른 날, 한 신입생이 도서관을 둘러보다 길을 잃은 듯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다가가 “찾으시는 책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학생은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이 찾는 주제를 이야기했고, 나는 함께 서가를 걸으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짧은 동행이 끝난 뒤, 학생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도서관이 낯설었는데, 덕분에 편안해졌어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날 학생이 기억한 것도 아마 책보다 먼저, 내 태도였을 것이다.
태도는 작은 습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의 뿌리이고 삶의 기초다. 태도가 무너지면 성과도 오래 가지 못한다. 반대로 태도가 바로 서면, 비록 작은 성과라도 오래 기억된다. 예의 없는 말투 하나가 협력을 무너뜨릴 수 있고, 따뜻한 미소 하나가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은 성과가 아니라 태도를 기억한다.
나는 성과를 좇던 자리에서 성찰을 배우는 자리로 옮겨왔다. 증권사에서의 보고서와 숫자는 이제 내 책상 위에 남아 있지 않다. 대신 도서관의 책 더미와 학생들의 질문 속에서 나의 태도가 매일 시험대에 오른다.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보일 수 있는 이 자리에서 나는 더 큰 것을 배운다. 내 삶을 끝내 지탱해 줄 건 화려한 이력서가 아니라, 하루하루 쌓아온 태도라는 것을.
태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직함은 바뀌고, 성과는 덮이지만, 태도는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흔적을 남긴다. 결국 남는 건 태도다. 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고, 앞으로 나를 이끌어 갈 길이다.
“다음 글: 〈행복은 늘 곁에 있었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