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삶에는 빠름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순간들이 있다.
성과를 내야 인정받고, 인정받아야 살아남는다고 믿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증권사에서 보낸 13년 동안 나는 늘 속도와 성과를 좇았다. 더 많은 보고서, 조금씩 높아지는 직급, 달콤했던 성과급. 그것들이 나를 증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모든 성과들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 보고서는 하루가 지나면 폐기되었고, 성과급은 통장을 스쳐간 뒤 기억에서 사라졌다. 오래 남은 건 숫자가 아니라, 그 속에서 잃어버린 나였다.
도서관이라는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책장의 바스락거림, 학생이 건네는 짧은 인사,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깊게 울렸다. 성과는 사라졌지만, 성찰은 남았던 것이다.
삶을 지탱하는 힘은 결국 태도였다. 어떤 자리에서 일하든, 어떤 조건에 놓여 있든, 내가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나를 지켜 주었다. 성과보다 성찰이, 속도보다 태도가, 결과보다 과정이 내 삶을 단단하게 했다.
혹시 지금, 빠름의 압박과 성과의 무게에 지쳐 있다면 이 글이 작은 쉼표가 되기를 바란다. 성과는 잊히지만 태도는 남는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곧 우리의 길이 된다.
1. 빨리 사느라 놓친 것들
“내일 오전까지 초안을 볼 수 있겠지?”
퇴근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을 챙기던 순간, 모니터에 팀장님의 메일이 도착했다. 사업 보고서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소리 없는 한숨이 흘렀고, 꾸리던 가방은 다시 바닥에 놓였다.
“내일까지 할 수 있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목소리였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못할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네, 내일 오전에 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남자친구(지금의 신랑)와 함께하려던 저녁은 사라졌다.
“미안해. 오늘 저녁에 못 만날 것 같아. 야근해야 할 것 같아.”
휴대폰에 찍힌 짧은 문자를 보내는 손가락이 한없이 무거웠다.
“괜찮아. 야근하느라 고생이네”
남자친구는 이해해주는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아쉬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저녁이 눈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사무실 창밖은 여전히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도시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 보였다. 반대로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걸까?” 라는 질문이 목까지 차올랐다.
텅 빈 사무실에는 아직도 몇몇 자리의 불빛이 켜져 있었다. 모니터 불빛에 의지해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피곤에 절은 어깨, 연신 울리는 메신저 알림음, 무심히 커피를 리필하는 손동작. 그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익숙했다. 모두가 이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한 듯,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날, 나는 깨달았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것을. 서른 초반까지만 해도 야근을 마치고 사무실 문을 나서면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성취의 기운이 피곤을 덮었고,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빠른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구보다 빨라야 한다고, 성취와 보람은 오직 속도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똑같은 야근이었는데, 뿌듯함은 사라지고 허무만이 남았다. 공기는 차갑게만 느껴졌고, 불빛은 피로를 더 선명하게 비췄다. 빠름은 내게 성취를 준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놓치게 하고 있었다.
이런 날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약속을 취소한 기억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약속을 잡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또 취소하게 될까 봐, 또 미안한 마음을 남기게 될까 봐, 차라리 일정을 만들지 않는 편을 택했다. ‘이번만’이라는 말은 처음엔 위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겐 핑계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관계보다 일을 우선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퇴근길, 편의점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휴대폰 화면 속 빛나는 취소 메시지는 내 삶을 낯설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잃은 건 단순한 한 끼 식사나 데이트가 아니었다. 삶의 균형이었고, 나 자신을 지켜낼 기회였다. 빠름에 매달린 대가는 내 시간과 마음의 파편들이었다.
혹시 지금도 빠름에 쫓기고 있다면, 잠시 멈춰 자신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나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가 속도에 휩쓸린 삶을 되돌려 줄지도 모른다. 빠름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멈춤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다음 글: 〈성과가 전부인 줄 알았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