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속도와 호흡
읽기는 늘 정답 찾기였다.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우리는 이해하기보다 외우는 쪽을 택해야 했다.
책은 누군가의 해석에 따라
그대로 읽어야 하는 고딕체였고,
나의 생각을 필기체로 끄적이는 일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의외로 책 읽기에 약하다.
번역서가 많은 탓에 오역이나 성의 없는 번역을 문제 삼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읽는 연습을 충분히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책이든 거의 같은 속도로 읽는다.
그러나 나는 책마다, 문장마다
적절한 속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300년 전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
“지나치게 빨리 읽거나
지나치게 느리게 읽으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책에는 각자의 호흡이 있다.
그 호흡을 무시한 채 읽으면
읽고 난 뒤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최근 나는 책을 너무 천천히 읽다가
오히려 집중력이 흐트러져
내용을 놓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속도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모든 책을 같은 방식으로 읽는다면
그 독서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천편일률적인 독서 끝에
우리는 종종 책 대신
저자의 강연을 찾아 듣는다.
작가는 이미 책 안에
자신의 생각을 모두 써 놓았을 텐데,
우리는 책 바깥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한다.
물론 깊은 감동 끝에
더 알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쏟아지는
공개 강좌들을 보다 보면
초등학생을 가르치듯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은 사실 책속에서
이미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설명을 다시 듣는다.
이 현상은 다중 미디어 시대의 흐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책 읽기가
어느 수준에서 멈춰 있는가를
드러내는 징후이기도 하다.
읽기가 성장을 멈출 때
질문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질문이 어려운 사회에 사는 우리들
어쩌면 우리가 잃은 것은
질문이 아니라
멈출 수있는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읽다가 멈추고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물며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심상을 지켜보는 일
우리는 그런 읽기를 배운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