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벗어나기

60억개의 우주 - 나의 우물(수정했습니다^^;;)

by 무뿔

인간 배아의 형성과정을 보면
발달 초기에는

꼬리와 아가미를 지닌 형태를 거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아가미와 꼬리는 배아에서 태아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꼬리뼈만이 흔적으로 남는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약 5억 년 전부터 시작된

척추동물의 진화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다.
인간 배아가 어류의 특성을 공유하고,
양서류와 파충류의 단계를 지나온 흔적을 지닌다는 사실이
생명의 초기에서 어떤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즉,
개체가 전체를 반복한다는 감각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명확한 결론이 내려진 사안은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생명이 시작할 때 거쳐야 했던 그 긴 경로를

우리의 의식도 반복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의 의식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자라면서 유년의 기억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의식은 그렇게 언제 부터인지 시작을 알 수없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지각능력이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추고 퇴행할 수 도 있는 반면에

의식은 신체의 발육이 끝난 이후에도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는 일정한 기간 동안
주어진 틀 안에서 동일자와 모방을 통해 배우고,
기존의 질서 속에서 자신이 닿을 수 있는 한계까지 뻗어나간다.

내가 사고하는 마음의 세계를 나는 나자신의 우물이라 부른다.

우물은 그 속에서는 완결된 세계이며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우주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우물을 가지고 산다.

우물을 넘어서는 것은 내가 나를 극복하고 더 큰 우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이 오면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고

더 이상 변화나 발전이 없이 기억속에 담긴 경험을 되뇌이며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다만

어떤 계기로 해서 의식은 막을 뚫고 성장을 재개할 수 있다.

개체로서의 인간이 처음 이 과정을 통과하는 시기를
우리는 사춘기라 부른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의 의미는 사춘기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 이후에도 불안과 회의가
나의 판단을 대신하려 드는 순간마다
다른 형태의 고민으로 되풀이된다.

생각이 달라진다고 현실이 바뀔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강하게 자리 잡는 순간, 의식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그것은
성장통일 수도 있고 시련일 수도 있다.

이제까지 그를 지탱해왔던 규범과 법칙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좌절과 방황을 불러온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지도, 방황하지도 않은 채 무난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삶의 어느 한순간,
현실과 신념이 정면으로 맞서는 순간이 과연 한 번도 없을 수 있을까.


그때
기존의 질서는 힘을 잃고,
새로운 세계는
아직 낯설고 두렵다.

이는 특정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 모두가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이 멈춘 채로 살아간다.
불안과 회의를 돌파하기 보다 관리의 대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의 자신을 넘어서려 한다.

그러나 그 시도들 모두가 사유의 경계를 넓혀주지는 않는다.


의식이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물을 벗어나는 순간이 필요하다.

우물 안에서는 설명되던 질서가, 밖으로 나서는 순간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우물을 벗어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책을 읽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다른 우물에서 세계를 바라본 흔적이며

읽어내기란

그 흔적을 따라가며

내 생각의 한계를 더듬어보는 시간에 가깝다.

매거진의 이전글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전거 타기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