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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긴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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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Nov 05. 2023

세미와 하은이에게

조현철 <너와 나>

크레딧이 하염없이 올라가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었어.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고 있던 걸까.


너희와 비슷한 또래이기에 그 비극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나의 수학여행도 그 여파로 취소됐었거든.


참사 며칠 뒤 학교의 영어 선생님이 수업 도중 한탄을 하셨어. 정말 안타까운 사고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라며 담담하게 말하시고는 갑작스레 화장실을 간다며 교실을 나가버리시더라. 평소에 모든 열정을 수업에 바치시고, 1분의 시간마저도 아쉬워하던 그 영어 선생님이 말이야.


그때 서둘러 화장실로 향하던 영어 쌤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한 말이 뭔지 알아? "세월호 때문에 눈물 흘리시는 거 아니야?" 라며 추측하고 있었어. 알고 있어, 정말 철없고 개념 없는 행동인 거. 이따금씩 세계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던 사고 소식들. 수백 명이 죽고 다쳤다는 그런 소식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너무 멍청하지? 단순히 나와 연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흐르고는 매년 기일이 다가와서야 "아 오늘이 사고 났던 날이구나"라며 마음속 모서리에 방치되던 기억을 꺼내올 수 있었어. 어느 순간엔 그 모서리에 조차 자리가 남아있지 않더라. 나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혔다는 말이겠지.


어느새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나는 직장인이 됐어. 그 사이에 철이 좀 들었던 걸까?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다양한 감정을 소화할 수 있게 된 지금, 너무나 운 좋게도 너희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게 됐어.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희가 오롯이 감당했을 감정들이 두 개의 큰 파도를 만들어 한순간에 나를 덮쳤어.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 행복했던 일상, 작은 행동 하나에 세상 무너질 듯 끓어오르던 질투, 그 질투로 만들어지던 앙금, 천신만고 끝에 고백하는 서로의 속마음까지. 누구나 겪었던 고등학생 때의 하루하루 전부가 첫 번째 파도.

잔잔하지만 가끔씩 높게 일렁이던 이 파도는 나를 너희들의 관계에 완전히 녹아들게 만들었어. 밖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남남이 아니라, 몸을 맡기며 감정 속을 같이 유영하게 된 거야.


차마 직접 물어보진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떠보던 세미를 보며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 모두가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차마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알음알음 물어가던 풋풋했던 기억.

내 말 한마디에 웃는 너를 보며 이거구나 싶고, 집에 돌아와 그 순간을 돌아보며 행복해하고, 이렇게 말했으면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아쉬워하고, 매일매일 너를 신경 쓰면서 행동하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번지는 네 미소를 보며 끓어오르던 질투도 마찬가지야.  


이제야 공감을 하기 시작했어. 너희가 겪은 모든 감정은 우리가 겪었던 감정과 같아. 너흰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어. 내 주변을 넘어 모두의 옆에 존재하는 소중했던 친구이자 가족인 거야.   

  


그렇기에 피할 수 없고 온몸으로 받아야 했던 높고 거친 두 번째 파도. 모든 말과 행동.


이미 안타까운 결말을 알고 있기에 참사 하루 전에야 피어나기 시작한 한 마디 한 마디 말, 하나하나의 행동전부가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어.

"나 간다?" "잘 가" "진짜 간다?" "진짜 가라" "빨리 들어가" "갔다 와서 봐"

너희의 마지막 대화를 지켜보며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가슴에 상흔이 하나씩 늘었어. 이렇게 순수하고 사랑스럽던 이야기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난 뒤로는 모든 장면이 비극으로 바뀌었으니까.

  

친구, 가족, 연인과의 관계가 이렇게 갑작스레 끝나버린다면, 몇 달을 혼자 끙끙 앓고 나서 속마음을 고백하고 행복해졌는데, 한순간에 모든 걸 집어삼켜버린 비극이 나를 덮친다면 그 애통함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야 공감하며 애통함을 느낀다 했지만 수많은 하은이들이 10년간 느꼈을 감정의 백만분의 일도 되지 않겠지.


이제라도 너희에게 사과하고 싶어. 거친 파도에 휘말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미안함이란 감정은 어느 때보다도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어. 미안해. 정말로.

너희를 알게 된 지 벌써 일주일이 돼 가는데도 거대한 파도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네. 가장 큰 이유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기억 속에서 지워가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 때문일 거야. 이 자책이 끝나고 잔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한들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해.    

 

우리 모두는 똑같은 고등학생이었어. 아니, 너희는 결국 아름다운 사랑을 얻어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었지. 그렇기에 가장 아름답고 풋풋했던 시절에 저물어야 했던 너희들의 삶이 너무나도 비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에 귀 기울이렴.

이렇게밖에 전하지 못해서 미안해. 마음속에 깊이 남겨진 만큼 모두가 너희를 잊지 않을 거야.

갔다 온다는 말, 기억하며 기다리고 있을게.

잘 지내 하은아. 그리고 잘 갔다 와 세미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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