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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부상 Dec 27. 2020

그 구멍가게는 아직도 그자리에

부여군 규암면 작은 골목 탐방길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니 이내 눈이 올 것만 같다. 약간은 쓸쓸한 기분마저 감도는 그런 날, 무작정 걷고 싶기도 하다. 규암리의 골목을 조금은 느리게 둘러보니 어느새 봄이 온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규암리는 1968년 이전까지 200여 가구가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 1900년대 초반부터 조선팔도 보부상들의 집합지였던 홍산장과 더불어 규암에도 큰 장이 있었다. 나루터가 있었기 때문일까. 사람과 물자가 몰리니 마을의 거리는 여관, 술집, 백화점, 터미널로 채워졌고 언제나 사람들이 붐볐던 번화가였다. 강경을 거쳐 한양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던 규암은 50여년 전, 다리가 생기며 나루터는 자연스레 사라졌고 규암의 시간도 멈췄다. 


하지만 그 흔적이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케케묵은 시골마을로 치부하기엔 규암이 가진 이야기가 궁금해 골목마다 만나는 토박이 어르신들께 말을 건넸다. 


“여그가 부여땅에서 최초로 영화 틀어주던디가 있던데여. 나도 그때는 세상 빛 보기 전이라 보진 못했어두, 지금 봐봐 얼매나 커. 가끔 여기 지나댕기면 궁금은 혀. 나도 못본 그 영화들이....”


CGV, 메가박스 못지 않았던 옛 마을영화관


녹이슬어 까맣게 변해버린 철문이 세월을 말해주는 듯,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고 그저 골목을 돌면서 지나칠 뿐이다. 대촌이었던 이곳에 영화가 틀어지는 날이면 사람들로 붐볐을 상상을 해본다. 양옆으로 뻗어있는 나뭇가지에 새잎이 올라오는 계절이 되면 이곳 또한 초록잎으로 무성하게 덮 힐 것이다. 


해방 직후 규암에서 태어나 전쟁통에도 줄곧 규암을 벗어난 적 없다는 강씨 할머니는 보지 못한 영화가 못내 아쉬운 듯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몇십년전 얘기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 혀. 장날만 되믄 각지에서 어찌나 사람들이 겨들어 오는지 밥집마다 꽉 찼었지. 여관은 방도 없어서 한방에 몇 명씩 들어가 잤을 껴. 나도 우리 어머니랑 옆집 아줌마들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디, 무튼간에 여기 골목 벗어나면 쬐끄만 전방이 하나 있었어. 그 집은 아직도 있댜”

지금은 없어지거나 자리를 옮긴 곳들의 흔적
모습을 간직한 채,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 곳들이 간간히 눈에 보인다.


강씨 할머니 어렸을 적, 조그만 술잔에 얼마씩 값을 매겨 팔던 ‘잔술’은 그시절 규암리 사람들의 삶에 한잔의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옛 영화관 골목을 빠져나와 도로쪽으로 나와본다. 아직도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몇몇의 상점들이 눈에 띈다. 이발관, 방앗간, 다실.. 모두 간판만 현대식으로 바뀌었을 뿐, 건물의 구조와 내부를 채우는 집기들은 옛것 그대로 존재한다.


다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자. 페인트 칠이 벗겨진 ‘규암목제합판 제재소’의 글자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다. 군데군데 뜯어진 벽면과 슬레이트 구조물이 아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름의 분위기를 풍기며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고 있다. 


지금이야 마트, 편의점이 생겼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회’라는 간판이 많았다. 시간이 멈춘듯한 이곳 규암도 여전히 ‘상회’가 많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묻어있는 규암고추마늘상회

‘규암고추마늘상회’, 현재는 영업하지 않지만, 원래의 주인 어르신들의 사랑방 내지, 창고로 쓰인다. 


“몇년전까지는 그냥저냥 장사를 했는디, 이제는 나이도 먹고..자식들도 그만하라고 하고..그래두 가끔은 여 와서 이것저것 혀유”


규암고추마늘상회의 삐그덕 거리는 문으로 김씨 할아버지가 배추를 내오고 계신다. 김장철을 맞아 오래 장사하던 터에서 배추를 절이셨나 보다.


1970년대 중반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물려받아 지금의 김씨 할아버지가 45년간 장사를 했다. 1968년 백제대교가 생기며 생활권이 현재의 부여 읍내로 옮겨지고 규암이 쇠락의 길로 들어설 때 즈음, 주변 상회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냈다. 


“내 아버지가 장사했을 때 까지만 혀두 잘살았지. 다들 우리집 와서 고추 빻고, 기름짜고. 장은 하여튼 매일 서 있으니께. 택시들도 여간 많았던게 아녀. 그러다가 다리가 생기면서 지금 읍내가 커지니까 다들 문 닫고 떠나드라고. 나는 떠날 수가 있나. 몇십년을 살았는디. 자식들도 키워야 되고”

옛 골목 정취가 서린 규암리 골목. 할 일을 다한 연탄들은 골목 탐방객을 반겨주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골목길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짤막한 규암의 옛 모습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아직 그 흔적들이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어느 집의 마당에도 그 이야기가 서려 있고 매일 보는 오래된 가게도 저마다 규암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보내다가 한적하게 어딘가를 걷고 싶다면 규암 골목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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