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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부상 Jan 03. 2021

두 여자가 시골에서 같이 사는 이유

부여 규암 수북로를 힐링의 정원으로 가꾸는 두 여자.

"생판 모르는 사이로 만나 환상의 짝꿍이 되어 시골의 정취 속에 살고 있어요"



네온사인 반짝이는 도시만의 경쾌한 이미지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생활 양식이다. 바삐 움직이는 거리의 사람들과 빽빽한 차,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들리는 이름 모를 목소리들 속에서 누군가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이는 화려함에 매료되기도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고향의 정취와 지역의 가능성을 보고 규암에 정착한 이들이 있다. 추억과 쉼을 찾아 규암면을 선택한 두 명의 공예가를 만나봤다. 

저 멀리 하늘과 산 그리고 백마강이 보이는 뷰(View)


"다들 이곳에 올라와서 이렇게 좋은 곳이었는지 몰랐다고 하신다. 감춰있던 뷰가 탄생한 것이다"


규암 옛 농협창고를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천천히 빠져나오면 비교적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공사가 한창인 옛 적산가옥이 눈에 띈다. 근대건축물뿐 아니라 옛 한옥이 많이 남아있는 규암면은 그 자체로도 특유의 마을 분위기를 자아내며 다양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하얀 외벽을 가진 이 가옥의 마당엔 아기자기한 꽃들이 서로 겹치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심겨 있고 백마강 쪽으로 눈을 돌리면 도시의 유명한 루프탑 부럽지 않다. ‘수북로 1945’라는 나무표지판이 반기는 이곳은 어떤 공간일까?


1945년에 지어져 벌써 70년이 된 이 가옥의 가치를 알아본 건 천연염색 공예가 김준현 씨와 한복디자이너 최영숙 씨다. 그녀들은 풍부한 햇빛과 적당한 바람이 필요한 이들의 작업에 최적화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본래 이들의 작업장은 읍내에 있었지만 둘 다 흙내음을 좋아하고 밭매는 그것도 좋아했던 터라 조그만 마당이 딸린 작업실을 원했었다. 직접 발품을 팔아 시골의 풍경이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규암을 선택했고 3년 전에 이 집을 만났다. 쓰레기와 폐가구들이 쌓여있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특유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무척이나 맘에 들어 꿈꿨던 형태로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매입 후 모든 곳이 이들의 손길로 재탄생했다. 



천연염색 전문가 김준현 씨는 원래 동화구연구가로 10여 년을 활동한 베테랑이다. 그러다 목소리에 이상이 오면서 평소 좋아했던 바느질을 전문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바느질보다도 원단 자체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다양한 자격증을 보유한 린넨 천연염색가가 되었다. 시골의 정서를 만끽하며 자연물을 이용해 색을 얻은 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친정이 청양이라 20년 가까이 이곳 부여 생활권 내에서 살았던 그녀는 지금은 둘도없는 짝꿍 최영숙 씨가 10여 년 전쯤 부여로 시집오게 되면서 학부모와 방과 후 선생으로 처음 만나게 된다. 

염색하는 김준현씨(좌)와 한복을 제작하는 최영숙씨(우)

생판 몰랐던 두 사람을 이어준 건 공예였다. 염색을 통해 원단을 공급하던 김준현 씨는 의상학과를 졸업해 한복디자인 자격증을 보유했던 최영숙 씨와 만나 완성형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작품은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하고 바느질 솜씨를 인정받아 상품개발을 정식으로 의뢰받기도 했다. 


규암면의 소박한 풍경을 재탄생시킨 이들의 작업장은 내년 초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다. 건물과 텃밭을 합하면 500평 정도가 되는데 누구나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자연을 접목한 공예체험형 카페로 운영될 계획이다. 공예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게 목표인 이들은 한국관광공사 두레 사업에 공모해 최종 선정되며 탄력을 받게 됐다. 


공간이 인간에게 주는 안정감과 의미는 꽤 크다. 누구도 찾지 않았던 오래된 집을 정리하고 새롭게 가꾸니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규암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이곳 수북로 1945는 누구나 쉽게 방문해 차와 음식을 받고 공예를 통한 힐링을 얻어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시골에서의 삶을 선택한 두 여자는 환상의 짝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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