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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부상 Jan 06. 2021

시골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

"규암리에서 노는게 재밌어요! 우리동네가 최고!"

저마다 우리는 가슴 한켠에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며 산다. 나이를 먹어도 어떤 음식을 맛보거나 익숙한 멜로디를 들으면 그 때의 ‘나’를 찾아 잠깐이라도 생각에 잠기기 마련이다. 가장 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는 ‘내가 살던 동네’가 아닐까? 유년 시절엔 커 보이기만 했던 학교의 운동장을 성인이 되고 찾아가 보면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다. 예전에 살던 집 앞 골목만 가도 부쩍 흐른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서울로 치면 한강을 바로 곁에 둔 아이들의 마을, 규암리

“저는 6살에 규암으로 이사 왔는데요. 차들도 많이 없고 공기가 좋아서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요, 처음 규암 와서 친구도 없었는데요~ 놀이터 가니까 또래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다 친구에요”

또박또박 자기 이름을 말하며 규암은 전체가 놀이터라고 말하는 은찬이는 규암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아산에서 살다가 6살 때 규암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규암은 어떤곳이냐고 물으니 은찬이의 눈에 비친 규암은 온통 ‘놀 것’으로 가득 찬 모양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처음 규암에 내려와 놀이터에서 놀며 동네 친구들과 어울렸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들하고 어느 가게 갔다가 또 어느 가게 돌고 오는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저는 여기 온 지 얼마 안되 아무것도 몰랐어요. 근데 어떤 친구랑 같은 팀이 돼서 다 알려줬어요”


규암 지리를 몰랐던 은찬이를 배려해 규암 토박이 아이들은 팀별로 달리기 시합을 펼쳤다. 은찬이와 한팀이 된 친구는 동네 선배 포스를 풍기며 떡볶이 파는 곳은 어디고, 문구점은 어디고, 마트는 어디인지 알려주다 보니 어느새 시합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떡볶이 한 컵씩 손에 쥔 채, 오물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규암에서 나고 자란 서정이는 11년 인생을 모두 규암에서 보냈다. 이사를 해 본 경험은 있지만 그마저도 규암에서 규암으로 옮겼다. 단발머리에 앙증맞은 앞머리가 유독 귀여운 이 소녀는 몇 안되는 규암 고층 아파트단지에 산다. 서정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날씨 좋은 날, 뚝방길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것. 백마강변을 따라 길게 쭉 뻗은 산책길에서 바퀴를 열심히 밟아 친구와 미리 정해놓은 반환점을 돌고 오는 게임이 재밌단다. 결승점에 도달했을 때, 바람이 살짝 불어주면 유독 기분이 좋아진다는 영락없는 소녀다. 


“저는 수북정 앞에서 살아요! 아빠랑 같이 백제교에서 자전거 타면서 놀았어요. 저는 규암에 높은 전망탑이 생겨서 한 눈에 우리동네가 다 보였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커서 돈 벌면 높은전망대를 제가 지을거에요!”

통통한 볼살이 복스러운 보성이는 수북정 앞 주택에서 산다.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내거나 축제가 열릴 때 마다 보성이네 집 앞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학교를 마치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릴 때 보성이가 주로 찾는 곳은 이 수북정이다. 자신이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높은 곳에 올라서 강 건너 부여 읍내를 보는 게 짜릿하다는 아이다. 

“학교갈땐, 걸어서 가기도 하고 뛰어서 가기도 하는데 주로 뛰어서 가요. 걷는것보다 2분 빨리 도착할 수 있거든요. 산이랑 밭지나면 바로 큰 길보이고 육교밑이 학교에요!”


운동을 좋아하는 날쌘돌이 윤후는 학교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하다. 수업을 듣는 건 지루하지만 아침마다 골목 사이로 뛰어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날이 추워질 무렵엔 운이 좋으면 아침 일찍부터 붕어빵 장수를 만나 하나씩 먹으며 올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집 밖을 나가는 일이 줄었지만, 활동적인 윤후는 마스크를 챙기고 홀로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아이들 모두 규암초등학교 4학년 같은 반 친구들이자, 한 동네 죽마고우다. 좋아하는 것, 성격도 다르지만 각자 어디 사는지, 누구네 집 근처엔 뭐가 있는지 훤히 꿰고 있다. 어느 집 나무의 단풍이 먼저 피는지도 알고 있는 요 꼬맹이들은 오늘도 규암리 골목을 누비며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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