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년전의 활기를 되찾아 줄 다음 세대가 필요해"
암만, 몇 십년전까지만 해도 규암면 상인들은 활기가 넘쳤지, 이제 그 활기를 다음 세대들이 이어줘야 혀
2020년 현재, 한때는 하루에 몇십건씩 단체손님을 받으며 성행했던 국밥집도 문을 닫았고, 전국각지의 관광객에게 쉴 자리를 제공했던 여관도 문을 닫은지 오래. 이 모든 이야기는 규암면 토박이 상인들의 삶의 한 귀퉁이다.
“50년 가까이 장사를 해오면서 항상 가슴에 남는 건, 그 옛날 우리 집에서 밥을 사먹던 마을 사람들이 없다는거..그거 하나지”
자온로 72-1번길 ‘영일루’라는 간판을 내건 해장국집이 있다. 이곳의 안방마님은 올해 72세 백발의 여자 사장님. 그녀는 규암 토박이로, 20대 후반이던 1976년도부터 짜장면과 짬뽕을 주메뉴로 하는 중식당을 남편과 개업했다. 30여년 전에 사별하고 혼자 장사를 이어오며 2남 1녀를 키워낸 억척스런 우리시대 ‘어머니’상이다.
“오래전에 내가 어렸을 때, 규암하고 현재 규암을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지요. 지금 나도 늙었고 규암도 때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 업을 딸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이유는 ‘영일루’를 찾아줬던 손님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의 보답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장님은 규암 토박이로 70여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기까지의 세월을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거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다 보니 어느새 막내딸에게 가업을 물려 줄 심산으로 올해부터 딸에게 기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영일루라는 이름은 사실 갑작스럽게 우연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남편과 식당을 개업하겠다고 결정할 당시, 사실 간판 이름도 정하지 않은 때였다. 당장 먹고살려면 일단 관할 부서에 영업신고는 해야 했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면사무소를 찾았다. 담당 공무원의 첫마디는 “그래서 명칭이 뭡니까?” 였다. 막상 그 질문을 들으니 이 사장님의 남편은 ‘뭐라도 대답해야 되겠다’ 마음먹었고 부여의 명소 ‘부소산 영일루’를 떠올렸다. 햇살을 받으며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뜻의 영일루.
지금은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메뉴도 바꿨지만 30년 이상 서민의 대표 음식 짜장면을 팔며 쌓은 추억이 상당했다. 졸업식 시즌마다, 이사 철 마다 규암 사람들은 영일루를 찾았다. 김이 모락 나는 짜장면 한 그릇을 두고 저마다의 사정으로 맛있게 비벼 먹던 영일루의 시그니처 메뉴는 언제나 인기였다.
부여 읍내보다 번성했던 규암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영일루의 명성도 조금씩 사그러들었지만,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던 사장님은 상호만 그대로 유치한 채 메뉴와 위치를 변경했다. 지금은 해장국 맛집으로 유명하다.
“늙은이 욕심일런지는 몰라도, 초반처럼 부소산에서 황포돛배를 타는 여정에 규암나루터를 다시 포함시킨다면, 더 많은 관광객들이 규암을 찾아주지 않을까요?”
백발의 노인이 된 이사장님은 비단 ’영일루‘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규암의 번영을 원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손에서 탄생한 맛의 비법이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 지금의 규암리를 터전으로 잡고 살아갈 세대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강에서 이것 저것 잡아다 팔기 시작하고 바닷마을 생선을 받기 시작하면서 요리하다보니 우리 집 가업이 됐지요.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나 역시도 몇 십년 째 장사하면서 돈 벌어요.”
외지인이 규암에 들르면 추천받는 맛집 중 하나인 ’송도회관‘. 황태찜과 아구찜이 인기메뉴인데 생선물을 비롯해 오리구이도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이곳의 역사 또한 꽤 나 오래됐다. 규암에 나루터가 있을 적부터, 군산항에서 넘어오는 바닷고기들은 모두 여기 모였다. 황태와 아구가 유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가의 민물고기에 익숙한 규암 사람들은 전라도에서 모여드는 바닷고기에 눈을 떴고, 그 조리법을 누가 제일 맛있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식당의 명성이 판가름났다.
송도회관도 그런 곳 중에 하나다. 2대째 내려오는 유구한 세월을 자랑하지만, 변함없는 맛은 규암을 오래전에 떠난이도 다시 찾게 한다.
규암에서 장사하며 보낸 몇 십년의 세월이 누군가에겐 가업이 되고, 어떤이에겐 다시찾게 되는 이유가 된다. 현재에 와서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규암의 시절에 대해 향수를 갖는 건, 결코 영업의 이익뿐은 아니다. 이들은 다시 북적였던 규암의 모습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