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J에게

by 조수연
끝끝내 사랑하고픈 누군가를 위하여.


제이, 하고픈 이야기가 있어요.

오늘 나는 그 이야기를 꼭 해야만 하겠어요.


그대, 나의 미움까지도 사랑해 줄 건가요.

그러나 제이, 잘 들어보아요.

이건 미움이 아니랍니다.

속절없이 흘러왔던 어떤 인생의 단편일 뿐이에요. 나는 그저 미워하지 않기 위해 하릴없이 사랑을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정말.

때로는 흘러온 시간들이 범람해 나를 뒤덮기도 하였지만, 그 범람에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가던 어린아이는 이제 여기에 없어요. 단지 오랜 고찰을 끝낸, 마침표의 여인만 남아 있을 뿐이죠.


내게는 아주 오래된 카페트가 하나 있었지요.

해질 때마다 곳곳을 기워두어 모양새가 조금 빠질지는 몰라도 나는 폭신하고 포근한 그 감촉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런데 한 날은 연신 바늘을 휘감아 놀려보아도 찢어진 카페트를 도무지 꿰맬 수가 없었어요. 백방으로 노력해 봤지만 결국 카페트를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랐을 때,

그때,

나는 맨살을 드러낸 바닥을 보고야 말았어요.

약간은 촌스럽지만 온기를 간직하고 있던 그날의 바닥은 내게 카페트를 접어둘 기회를 준거예요.


맞아요, 처음 나는 이 비닐장판을 가리려고 카페트를 깔아 두었었죠. 그런데 맨바닥으로부터 전해졌던 그 따뜻함을 무엇으로 전할 수 있을까요.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카페트를 걷어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엔 그 매끈한 바닥이 낯설었지만 이내 그 따뜻함이 나를 장악하고 말았어요.


경직된 나를 더 뭉근히 녹여주는 이 맨바닥은요,

제이, 이것은 오히려 아름다움에 가까와요.

이 맨살을 드러낸 바닥을 그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되려 카페트가 있던 때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지경이니까요.


아, 나는 그 카페트를 버리지는 않았어요.

잘 개어 깊이 넣어두었답니다.

그대 이 편지를 받는 다면 오늘 나를 만나러 와줄래요. 따뜻한 맨바닥을 구경시켜 줄게요.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대의 맨바닥을 구경시켜 주세요.


추신,

당신이 오는 날, 나처럼 맨발이기를.


품을 파고드는 봄의 찬바람에서

삼월 이십칠일, 온몸과 마음으로 나를 안아줄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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