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조금 예민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고
이제 막 교육을 시작한 아들이 있는 학부모로서 내 의견은 이렇다.
우리 아이들은 메타버스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첨단 기술이 학교 안으로 들어올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공부의 본질 아닐까?
왜 대학입시를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일까.
이제는 중요하지 않아졌다는 말이 사실일까?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우리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시기에도 좋은 대학은 여전히 좋은대학일거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이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외국으로 나가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은 그냥 학교 간판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환경이 완전히 달라질 기회라고 생각한다.
운명의 판이 바뀔 기회인 것.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이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자라면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이다.
대학이 아니라도 그 세상을 알 수 있다면, 그 세상에서 동경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편견 없이 나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좀 달라질까.
그런데 그걸 기대하는게 가능한일인가. 아니면 내가 열공해서 좋은대학 들어가는 게 그나마 가능할까.
나는 아직 후자라고 생각한다.
뭣도 모르는 새파란 젊은이를 아무런 편견없이 환영할 지성인 집단을 찾기는 어려울 것.
(단, 내 아이가 꼭 그 지성인 집단이라고 하는 데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
그냥 이 아이의 환경에 순응하며 행복하면 나는 그걸로되. 하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말일거다.)
세상이 각팍해질수록 경계심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느 세상이, 어느 집단이 내가 함께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 역시
아이가 쉬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 중 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는 과정은 생각에 부스터를 다는 과정이다.
하고 싶은 일과 전공이 뚜렷하게 맞지 않더라도
그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내 몸에 부스터를 하나 다는 것과 같다.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고민하는 것은 그 작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나를 좀 더 큰 판에 놓고 고민하는 것은 더 큰 세상에서
그리고 막연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꿈을 꿀 수도 있게 한다.
만약 부모가 아이의 대학 입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면
이제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아이에게
"공부가 아니더라도 일찍이 네 꿈을 위한 길을 찾으면 되. 공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한다면,
분명한 건 말만하고 그냥 두면 절대 안된다.
대학 입시를 준비해주는 과정 보다 더 큰 노력과 더 큰 고민을 해야한다.
그 더 큰 세상을 보는 길을, 그리고 가는 길을 부모가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너가 찾아야 할 길이고.' 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리고 대체로 청소년기 아이들은 부모를 믿고 잘 따라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부모 역시 새롭게 바뀔 세상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도통 모르는 것이다.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럼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해야하는 지 구체적인 가르침 없이
"공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방임과 같다.
부모 자체가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학령기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한다. 모두가 잘할수는 없겠지만 누구라도 열심히 해야한다.
학교는 모든 아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교사는 이런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부모는 그런 아이들을 온 마음을 다해 격려하고 응원해야 한다.
공부의 길은 아이나 부모에게 어렵다.
공부가 몸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아이들은 몸이 괴롭고,
요즘 공부를 시켜주려면 금전적 부담이 부모를 어렵게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삶이 고난할수록 이 길을 더 쉽게 포기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혹은 이 중요성을 아는 가정에서는 이 길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또는 정말 새로운 길을 개척해준다.
결국은 교육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커지고 그것은 아이들 미래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과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대학입시에서 자유롭게 각자의 행복한 삶을 존중하는 특별한 교육적 철학을 가진 부모도 있다.
그리고 그냥 잘 자라나는 아이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도만 하고 살고 싶지는 않다.
오래전 대다수 부모님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기 때문에 별다른 교육을 시켜주기보다
아이를 기도하고 응원해줄 뿐이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상황에 맞는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도 내 아이가 공부에 소질이 없고 그 과정을 너무나 고통스러워한다면
아이를 갉아먹어서까지 대입에 목메지 않고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보려 노력하겠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아이가 공부를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환경과 습관을 만들어주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아이가 삶에서 공부를 처음 접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