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시시비비-12>
<더시시비비-12>
11화. 거꾸로 흐른 끝에, 나는 한 점의 빛이 되었다
삶이 거꾸로 흐를수록,
나는 점점 더 ‘나다운 나’에 가까워졌다.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비로소 내가 선명해졌다.
삶이란,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쌓기보다
하나씩 비워가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더 많이 가지는 일보다
덜 가지는 쪽을 선택하게 되고,
더 말하는 것보다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삶이 거꾸로 흐른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나는 그 끝자락에서,
작지만 단단한 하나의 진실을 꺼내 들었다.
“사랑은 흐르되, 본질은 남는다.”
그 해 여름,
한 아이의 배가 아프다는 말로
시작된 병원 생활은
예상보다 길고 깊었다.
낯선 숫자로 바뀌었고
일상이었던 모든 것이
위태로운 경계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은,
감정보다 현실이 더 빠를 때
고요해진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묵묵히 손을 잡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조심스레 흘렀고,
기증자를 만나는 행운이 우리에게 왔다.
이식 수술을 받고,
다시 살아났다.
그 순간 나는 안다.
사랑은 다시 태어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죽음의 문턱을 함께 지난 관계는
더이상 이전의 사랑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삶의 끝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나는 삶을 거꾸로 살아야 했다.
아이가 살아났기에
나는 그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까지
이미 끝내고 살아야 했다.
그건 무거운 일 같지만,
사실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더 오래 붙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니,
매 순간의 호흡이 선물이 되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존재의 무게는
무조건 쥐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놓아줄 수 있는 태도에서 완성된다는 걸.
우리는 결국
소멸하며 존재를 증명하고,
사라짐으로 사랑을 남긴다.
벤자민처럼,
시간이 반대로 흐른다면
사랑도 그 반대 방향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
한 점의 빛처럼,
어둠 속에서 더 명확하게
삶은 살아진다.
이제 나는
무엇을 더 쌓기보다,
무엇을 잘 남길 것인가를 고민한다.
무언가를 가지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빛 한 점이라도
남기고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흐르고,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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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CBB-12〉 11화.
삶이 거꾸로 흐른 끝에서,
우리는 가장 선명한 사랑을 만난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