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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Aug 31. 2024

여름에 난 마음의 상처는 덧나기 쉬워요

친구



화끈했다. 내던지는 말이

조언일까? 배설일까?




경주에서 오랜만에 고향친구들을 만났다.

6월 퇴직한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친구의 방학을 염두해 둔 모임 일정이었다.

그러나 메니에르 증세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남편을 두고 올 수 없었는지 교사 친구는 호텔을 예약하고는 모임 전날 불참 의사를 밝히며 못내 아쉬워했다.




렌트한 차의 운전대는 부산 친구가 잡았다.

4명의 수다 시작이다.

점심을 먹기로 시간을 맞췄으니 식당부터 찾기로 했다. 아침부터 비어 있던 배가 슬슬 신호를 보낸다. 맛있는 밥을 위해 의기투합한다.

맛집찾기에 한바탕 두뇌 풀가동을 하며 우왕좌왕하다가 들어간 집은 대박이었다.

만족감에 공들인 시간을 서로 칭찬하며 맛난 음식을 만끽했다. 출발부터 좋았다.




뜨내기로 들어간 음식점 근처 카페는

잇따르는 우리의 여행운을 확인시켜 주었다.

주차를 하고 카페 입구로 들어선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질렀다.

드넓게 펼쳐진 해바라기와 촛불맨드라미가

두팔 벌려 우리를 반겨 주었고 그 앞을 산그늘진 너른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밖에선 보이지 않는 선물 같은 풍경을 숨기고 있는 카페였다.

카페는 이제 나들이 장소이자 대체 피서지다.

휴가철인데다 꿀뷰의 존재감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모양이다.

평일인데도 빈 자리를 찾을 수 없다.

난감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라 통창 옆 사람들이 때마침 일어선다.

행운이 우리의 뒷배가 되어 줌이 분명했다.




통창은 멋진 프레임 같다.

이토록 외향적인 8월의 태양과

비명을 지르기는 커녕 뜨거운 햇빛을 들이마시며 더 노랗게 타오르는 해바라기

그 뜨거움을 조용히 식혀 주는 강의 정취가

잠자코 여름을 보내려는 사람들까지 유쾌한 소란에 휩쓸리게 한다.

햇빛을 반사하기라도 할 듯 깔깔깔 웃음소리로 여름을 달리는 어울림이 프레임을 풍요롭게 채운다.

마음의 셔터를 누른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오후 5시가 돼도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열기다.

예전 같으면 30도가 넘는 기온은 한여름의 표상 같았는데 요즘은 35도 36도가 우스우니 모든 것이 물크러질 것 같은 폭양에 사람들은 허덕인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시원한 곳을 찾고 시원한 것을 먹고 시원한 옷차림을 한다.

카페 사람들도 그랬다.

시원한 음료를 앞에 둔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의 차림은 자유롭고 편안했다.

가끔 눈에 띄는 모습은 중장년의 아줌마들이었다.

정성스럽게 한 화장에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은 여름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멋이었다.




8월의 폭염은 나를 휘둘렀다.

여름과 맞물린 상반기 은퇴가 급격하게 기동을 정체시켰다.

더워 입맛도 잃었고 활동이 줄다 보니 일상의 생기도 줄어드는 같았다.

그런 와중의 모임은 활력과 기대를 주었다.

여행 전날, 요즘 유행하는 예쁜 자수 에코백을 사기 위해 한 시간 남짓 전철을 타고 동대문시장으로 갔다.

이른 시간 품을 팔며 도매시장에서 건져낸 수확물은 만족스럽고 설렜다.

친구들이 좋아할 얼굴을 생각하니 그랬다.




마가 섞인 남색바지에 인디언핑크 기본티를 넣어 입었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복장에 시원한 자수의 에코백은 여름스러웠다.

함께 이동하기 위해 광명역에서 합류한 친구의 복장 역시 가벼웠다.

굵은 가로 줄무늬 스웨터에 헐렁한 기지바지였다.

생소한 모습으로 느껴지긴 했으나 이 기온의 코디엔 서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기적인 인간이 이기적인 여름을 만들었다.

이기적인 계절 여름에 그에 걸맞은 이기적인 나만의 복장은 여름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결례가 없는 한 옷차림에 가장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계절, 여름이다.




오후 5시 반을 넘겼는데도 꺾일 줄 모르는 더위지만 더 이상 카페의 냉기에만 의존할 수 없다.

사진 찍는 친구가 손짓으로 우릴 불러낸다.

사진을 찍자는 얘기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얘기다.

줄곧 이어지는 사람들 틈에서 기회를 본다.

해바라기, 촛불맨드라미 꽃밭 골을 이동하며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사진 찍을 때만큼은 요리 조리 꽃차지다.

추억의 아카이브에 저장될 소중한 사진이다.




꽃만큼 우리도 덩달아 신나는데

갑자기 부산 친구가 어마야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른다.

흰 마블라우스를 이리저리 살피며 울상이다.

그러면서 울산 친구의 흰색 블라우스도 가리킨다.

열심히 사진 찍느라 해바라기를 스친 흔적이 두 친구의 흰옷을 물들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연노랑이 퍼져 있었다.

8월의 태양에서 해바라기로, 해바라기에서 옷으로

노랑의 격정은 다음을 건드려 줄 도미노의 순서를 찾고 있는 듯했다.




포만감을 준 점심과 카페에서의 배부른 경험,

다들 저녁 생각은 없다고 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다시 나와 마르게리타 피자에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갓 맞은 사위와 며느리 칭찬, 아이들 얘기, 찍은 사진을 보며 떠들고 웃다 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린다.

경주의 밤 공기는 입추의 마법이 통했는지 신기하게도 시원했다.

어디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절기의 괴리감을 느끼던 도시 아줌마들은

처서를 일주일 앞둔 이 시간 여행에 무릎을 탁 치며 또 한번 행복함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여름의 기층은 불안정하다.

제일 먼저 씻고 마스크팩까지 끝낸 부산 친구가 작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서운했다며 지난 일을 소환해 한껏 감정을 싣는다.

긴 맥락에서 보면 나도 섭섭한 것이 있는데 굳이 지금이라는 타이밍이 내심 마뜩잖았다.

그러나 서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섭섭해 한다.

사과를 아끼면 관계에 멍만 든다.

멍은 자꾸 퍼진다. 사과를 버리면 관계를 버릴 수 있다.

사과를 아껴야 할 이유가 없다.

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사과했다.




그러나 친구는 사과에도 불구하고 시동 걸린 감정을 끄지 않았다.

새로운 전개다. 돌발 상황이다. 급발진한다.

 이번엔 광명 친구를 훅 친다.

"ㅇㅇ아, 그 스웨터 너한테 안 어울려!"

"......  아, 그러니?

몰랐는데 말해 주니까 고맙네!..."

전해질 타격을 고려했는지 가볍게 몸풀기를 한 친구가 다시 내게 돌진한다.

"유유상종이라고, 나는 너네들 만날 때 최고로 좋은  옷 입고 와!"

"....."

"ㅇㅇ아, 너는 오늘 왜 이렇게 입고 왔어?

예쁜 옷 놔 두고..

쇄골이 다 드러나는 티를 입고 있으니까 안 예뻐 보여.

친구니까 그냥 말할게. 빈~티가 나!"




시간당 200밀리미터 국지성 호우에 행복했던 기분은 순식간에 쓸려 나가버리고 둥실둥실하던 마음은 수직으로 떨어져 방 분위기는 싸해졌다.

우리를 따르던 행운은 잠자러 간 것일까?

쓴 웃음이 났다. 불쾌했다.

소인의 중용을 찾기에 급급했다.




이 나이쯤 되니 호불호가 분명하다.

엄격한 자신의 규칙으로 선을 넘는다.

워낙 소신 있는 인물들이라 완고해진 인생관에 쭈뼛거리는 태도가 없다.

불쑥 불만으로 치받으며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친구라 해도 각자의 삶을 다 알 수는 없다.

혹시 그동안의 어떤 삶이 무의식의 빙산을 더 가라앉혔을까?

감정전달 방법은 미숙했고 의도치 않게 친구의 자신감은 넘쳐버렸다.

지적질이었다. 순간 상처가 났다.




이 상처는 내가 만든 것일까?

내가 실례를 했나?

아님 그동안 너무 잘 차려입고 다녔나?

유유상종, 최고의 옷, 빈티..




생각의 각도가 달랐다.

아무렇게 입은 옷이 아니다. 계절의 팁이었다.

모임에 대한 마음가짐은 같았다. 상황의 해결책이었다.

최고의 옷이 최고의 존재감일 리 없다.

그러니 일관되게 옷으로 나를 떠벌릴 필요는 없다.

옷차림이 주인이다 보면 허무해질 때가 있다.

나는 개성이 있고 게다가 나는 나일 수 있다.

마이너스의 미학을 실천한다.

여름엔 겉치레를 최대한 줄인다.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좋다.

그나마 하는 팔찌도 귀고리도 여름엔 피한다.

가장 좋아하는 스카프는 다른 계절에 양보한다.

개성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비교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패션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다.




삶의 동력이 큰 사람이다.

막내라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표현이 밝고 자유롭다.

매일 아침 운동길에 찍은 하늘 사진도 단체톡에 올리곤 한다.

그러나 마음폭은 맏이 같은 막내다.

고상하면서도 묵직한 면이 바탕에 있다.

지나친 효자 남편을 불평할 만도 한데 사랑의 힘이 있다. 맏며느리 역할도 순순히 받아들이며 소신껏 해나간다.

아이들에게도 모자람이 없는 엄마다. 누가 봐도 현모양처다.

자기가 선택한 일엔 언제나 최선이다.

결혼 후론 쭉 전업주부의 생활을 했지만 꾸준히 자신을 관리했다.

운전도, 골프도, 요가도 그림그리기도 수준급이다.

나름 살이 쪄 고민하고 있지만 체력은 부럽다.

무엇보다 외모는 탤런트 윤미라를 닮았고

웃으면 윤미라보다 더 예쁘다.




이 사람이 부산친구다.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속 깊은 애가 속 깊지 못했다.

47년지기 고향친구에게 언어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처벌할 규정은 까?

없다. 부산친구라 없다.




사람은 알몸일 때 가장 불안하다고 한다.

밑바닥이 드러나도록 쏟아부은 감정은 어쩌면 스스로의 알몸을 보게 되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감정 통제의 실패로 이어질 파동은 불안할 수 있으며 관계의 수습에 큰 고민을 안겨줄 수 있다.

고정관념으로 인한 감정 발산은 스스로를 속박할 수도 있으니 이래저래 불편하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나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이나 자존감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새벽 2시가 넘어 잠이 든 것 같다.

다들 일어나지 못 하고 있었다.

어느새 아침산책을 마치고 들어온 부산친구가 곧장 누워 있는 내게로 다가왔다.

"미안해, 내 생각만 말해서. 친구니까 이해해 줄 거지!"

그새 부산 사람이 다 됐나? 사과도 화끈하다.

생각하지 못 했던 빠른 사과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돌파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모임의 본질이 뭘까?

가장 편하고 가벼워야 할 고향모임에 옷차림으로 무게를 만들어 버렸다.

쏟아버린 감정이 시원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 내내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도 이 기분을 돌파하고 싶었다.

머리를 비워야 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해해. 친구니까 허물없이 그랬겠지!"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준비한 자수 에코백을 꺼내놓았다.

어제 주면 기분이 더 업 됐을 텐데

왜 오늘 주냐며 시끌벅적하다.

어떻게 이렇게 깜찍한 짓을 했냐며

각자 맘에 드는 가방을 차지하겠다고 깔깔깔 가위 바위 보를 해댄다.

60이란 나이가 무슨 대수랴

마지막 남은 가방 한개와 내 에코백을 사진 찍어 올렸더니 참석하지 못한 친구는 망설임없이 내걸 선택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행복은 행운이다.

행운이 돌아왔다.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를 건드리며 사는지 모른다.

사는 일에 누구나 맺힘은 생기고 언젠가는 그 맺힘을 풀어야 하니 그 순환이 인생 줄거리가 된다. 가늘든 굵든 끊임없이 풀어야 할 인생 줄기를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이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인생 뜨개질을 해 왔다.

코를 놓쳐 다시 떠야 할 때도 있었지만

고향은 참으로 질긴 정서적 배경이다.

뜨개질을 멈춘 적은 없다.

공감과 인정에 마음을 쓰면서 말이다.




우리는 불안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한발 나아가려다 오늘도 시행착오를 한다.

그러나 그 실수가 상처를 덧나게 하지는 말자.

미안하다는 말로 빨리 소독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처를 아물게 하자.

여름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름 상처는 덧나기 쉬우니까.




*사진:  친구 한미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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