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던 바로 그말

'영웅'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가 원했는가?

by hada




영화관 전용 엘리베이터는 사람들로 꽉 찼다

관객수의 기록을 써 가고 있는 미국 영화 아바타와 한국 영화 영웅을 보기 위해 가족끼리 주말을 할애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에게 몸이 닿지 않기 위해

외투와 숨쉬기를 누르며 올라가는데

입구쪽에 서 있던 예닐곱 살 정도의 꼬마 형제 중 한 명이 짧은 정적을 깼다.



"나, 영웅 봤다!"



남편과 나도, 이 엘리베이트 안의 누군가도 영웅의 행렬일 수 있으니

교육차원의 적극적인 관람을 이 엄마와 아들은 벌써 했구나 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찰나

둘째인 듯한 녀석이 뿅망치로 정수리를 세게 내리쳤다.



"임영웅??"



사람들은 마스크 속에서 표정으로 열심히 웃고 있었고, 한 평도 안되는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터지려는 웃음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렇다. 영웅은 폐부를 찌르는 노래의 영웅이었고

영웅은 역사가 부른 신념의 화신이었다.

영화 '영웅'은 창작 뮤지컬 '영웅'을 영화한 것이다.






광활한 자작나무 숲, 혹독한 눈보라 속

한점 점으로 사라질 듯, 쓰러질 듯 걷고 있는 안중근

결국 무너지며 무릎을 꿇고 절규하는 영웅

끝나지 않을 막막함과 나라를 빼앗긴 처절함이 휘몰아쳤고

흰 눈을 검붉게 물들이는 선혈이

몸서리쳐지도록 끔직하고도 아픈 단지동맹의 합창이

해일처럼 밀어닥쳐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휘청했다.



영웅은 물었다

조국이 무엇이냐고

영웅은 답했다

하느님과 함께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고

어머니의 애절한 모성애가 있고

애끓는 처자식이 있고 내가 있어야 할

조국의 흙한줌이 소중하다고



그러나 안중근은 조국에 묻히지 못했다.



갈기갈기 찢기는 식민지의 영혼

짓밟히고 뭉개지는 인간의 존엄

빛이라곤 찾을 수 없는 동토의 땅

조국을 살려내기 위해 죽어야 하는 운명

대한의병군 참모중장 안중근!

나라 잃은 국민은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역사적 수난에 모든 것을 바쳐 불굴의 저항을 한, 한 영웅의 숭고하고도 처절한 조국애를 보았고 새로운 형식으로 태어난 영웅에서 안중근과 독립 투사들을 다시 한번 기려볼 수 있었다.

영웅 관람 후 좌석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은 조국에 대헤 안이하지 않다고 말할 자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과 초라한 현실에 한숨이 돌았기 때문이다.



공존의 가치를 광기로 정복하려 한 제국주의의 서슬을 다시 한번 깨우치며

과거에 귀속된 반일 감정이 생생하게 솟구쳤다.






한국이 다문화사회에 들어선 지 꽤 됐으니

한국어 교육 대상자도 참으로 다양하다.

알다시피 중국, 베트남을 비롯해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 태국, 키르기스스탄 등의 학생들이 많고 간혹 미국, 호주, 대만 그리고 일본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이 있다.



학생들을 만날 때는 최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그들을 대하는 것이 옳은 자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고

한국 구성원들과의 원활한 관계와 적응을 돕는 것이 목표인지라

이 분명한 목표 앞에서 우리들의 자세는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어교육 14년차인 내가

단 한번 흔들렸던 적이 있다.



일본 결혼이민자를 드물게 만날 때가 있다.

한국어교육 교재가 어휘, 문법, 문화로 구성되어 있어 한국어 학습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문화를 가르치면서 대상자 자국의 문화는 어떤지 이야기를 동등하게 나눠 보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많고

가장 가까운 일본문화는 말할 것도 없어 호기심을 해결해 나가는 일은 정말 재미있다.



문화 이해 관점의 주류는 문화상대주의다.

각각의 문화는 독특하고,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어서 그 나라의 언어보다 문화의 이해와 상호작용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알게 하고 관계를 훨씬 좁혀 준다.

이건 바로 한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류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는 결혼이민자들이 누구보다 열린 자세로 다양성의 문화를 말하고 채워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부정이나 의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문화를,

그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문화상대주의는 일상화된 지구촌에 걸맞은 자세임이 분명하다.



한 주를 보낸 첫수업 시간엔 지난 주말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다가오는 주말엔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묻게 된다. 한국에서 어떤 문화적 경험을 했는지 또는 할 건지 묻는 거다.

수업 중인 일본학생이 주말에 천안 독립기념관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각오하고 가야 할 거 같다는 남편의 조언도 덧붙였다.



독립기념관은 민족의 수난사와 그것을 헤쳐 나온 민족의 정체성, 자긍심을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3.1운동을 비롯한 독립투쟁사와 태극기에 얽힌 역사 그리고 독립운동 체험관까지 있어

일제의 국권 강탈과 탄압, 경제적 독점 탈취 수탈, 조선인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민족 말살과 같은 일본의 폭압적인 만행을 마주볼 수밖에 없는 곳이어서 그 학생의 남편은 각오를 하라고 했던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대화는 35년 일제강점기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그때 한국처럼 일본도 어려웠어요.

일본은 한국사람들도 일본사람이랑 똑같이 대했어요!



그리고 작정한 듯 말을 이었다.


일본은 어릴 때부터 열린 세계관으로 모든 나라와 미래 가치를 위한 우호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한국은 아기들에게조차도 일본은 나쁜 나라라는 편향적인 인식부터 심어 주는지 모르겠어요!




일본의 일제강점기에 대한

인식의 전략은 일관되고 전술은 끊임없이 집요하다.

과거사에 대한 이기적인 편집은 세계를 상대로 난공불락의 성을 쌓으려 한다. 그들의 국력을 휘두르면서 말이다.

이런 전략과 전술을 부단히 학습한 학습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왜곡된 인식과 조작, 공공연한 합의가 상식으로 돌변했다.

조선 전체가 일본의 재산으로

제국주의의 야욕을 위해 짓밟고 지나갈 전쟁받이로 경멸한 그들의 야만에

일말의 수치심도 없이 한 일본 국민의 입을 통해 태연스럽게 내뱉아졌다.

그 생각은 워낙 굳건해 사회적 신념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파괴적이고 지배적인 야욕의 역사를

다방면으로 쌓아올린 높은 위상으로 덮으려는 일본의 시도가 어느 시기엔 의심 없이 먹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면서

일본의 일관된 신념과 위정이 몹시 모욕스러웠다.

자국의 평판에선 자연스럽게 우익 보수가 될 수 있겠지만

가해자의 무공감력과 무죄책감의 현실을 접하고 보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의식하지 않았던 거리감이 순식간에 생겨 버렸다.

현타가 왔다.



더럽혀진 이성과 오만을 자양분 삼은 무분별한 전쟁의 광기에는 무분별한 판단과 분별 없는 이유가 잇따를 수밖에 없다.

편협하고 공격적인 국수주의는 지금도 제국주의의 민낯을 보려 하지 않고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진심어린 참회 없이 추구하는,

그들이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는

미래의 가치에는 어떤 미래가 담겨 있는지

평화를 위한 신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것이 반성 없는 일본의 딜레마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가 원했는가?"



영화 영웅을 깊게 관통하는 주제곡 중의 하나이자 민족 항일 투쟁의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일본 학생에게 한 말이다.




가족이 여행간 사이

시어머니가 아들집에 청소해 주러 오셨다.

그런데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시어머니가 낡은 옷 하나를 버려 버린 것이다.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일찍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당신에게 사 준 내의,

어머니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오래된 소중한 물건이었다.



당신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일에 화가 치밀었고

그때부터 당신이 집에 있을 때만, 그리고 상황이 허락 될 때만 시어머니를 오시게 한다고 하지 않았나!

당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시어머니의 청소와 옷정리는 시댁에서와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정성스럽게 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옷이 아닌 한 나라는 어떻겠는가

일본을 우리가 초대한 적 없고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을 위해 무엇을 해 줬다니!

일본이랑 똑같이 대했다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당신의 집이 일가를 이룬 독립 가족 형태로

특히 당신의 재산에, 당신의 영혼에

간섭 받지 않을 권리가 있듯이

조선, 조선 국민들의 조국은 온전한 독립국이었므로

일본의 침탈과 탄압과 잔혹한 희생을 강요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집단이 개인은 아니기에 정치와 국민은 분리하는 게 맞다.

그동안 나는 일본을 이루는 개별적 구성원이 싫은 것이 아니었다. 극단적인 일본의 우익과 정치가 싫었었다.

그런데 그 날은 무례함과 불쾌감을 느꼈다.



역사란 현실과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긴 수비의 역사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 바로잡고 싶은 신념은 무의식적이나

다변화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미래의 국익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지사지의 지혜를 앞세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국격과

국력이 바탕이 된 한국의 국격이

미래지향적 공존의 가치를

일깨워 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영웅 관람 후 씁쓸하게 든 생각이었다.



한일 관계를 새롭게 선도할 영웅은 과연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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