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3층 개찰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늘 만원입니다
에스컬레이터가 수시로 고장나니
남녀노소 승강기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운 게 손주 사랑인데요
다른 사람 이랑곳 없는 물고 빠는 사랑
침흘리는 사랑이 아니어서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입 밖으로 나온 침은 좀 불편하니까요
응석받이로 보지 않고 독립된 유기체로 호응하는 할머니의 눈높이 대화가
목소리만큼 꽤나 상냥했습니다
아이의 관심사를 얘기하는 듯했습니다
앨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가벼운 웃음이 줄곧 이어졌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맨 앞에 서 있던 할머니와 손자가 층 버튼판 앞에 바짝 붙어 섰습니다
줄서 있던 노인들이 느릿느릿, 차곡차곡 들어섭니다
이제 문을 닫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닫힘 표시를 누르지만 할아버지 두어 분이 엘리베이터 빈 공간을 꾹꾹 누르며 끊어질 듯 발을 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게임하듯 엄지와 검지로 3층과 닫힘 표시를 빠르게 오가며 작동시켰습니다
닫힘 표시를 누른다고 바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승강기를 몇번 타 본 사람은 경험으로 압니다
누군가 하나 내려야 닫히지 않을까 라는 부담스런 생각을 할 때쯤 문이 닫히니까요
손자가 닫힘 표시를 누르고 있는데도 문이 닫히지 않자 상냥한 할머니가 손자에게 어색한 분위기를 밀치며 수수께끼 내듯 말했습니다
"과~연! 닫힐까?!"
아이는 닫힘버튼에 힘을 더 주었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은 차라리 발랄했습니다
"안 닫히면 너가 내려애 돼. 애들은 내려야 돼!"
간간이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아니에요! 맨 나중에 탄 사람이 내려야 돼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한참이 지났는데도 문이 닫히지 않는 겁니다
아이가 닫힘버튼을 계속 누르는데도 말이죠
승강기가 정말 한도초과에 걸린 겁니다
그때 할머니가 웃으며 손자 손을 잡았습니다
"우리는 합체~"
그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퇴장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행동은 정말 가볍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그 순간, 그 공간엔 청정한 바람이 휙 불었습니다
신선한 충격에 가슴이 찡하더군요
다른 분들도 저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무언가에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혼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이처럼 부드럽고 단호한 뒷모습을 어린 자식이나 손주에게 보여줄 수 있는지,
외면하지 않은 상황을 자연스럽게 가치화시킬 수 있는지의
질문이 던져졌기 때문입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한번도 예측해 보지 않았던 일을 겪었으니
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잔잔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어른이란 무엇일까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망설임없이 실천하는 것일 겁니다
세상의 진부한 관성을 과감히 가르며
새로움을 보여주는 사람일 겁니다
지혜로 유연함을 발휘하는 것
그래서 따뜻한 풍경이 되는 사람일 겁니다
그렇다면 진짜 어른은 무엇일까요?
공동 선의 가치를 실천하며
시민의식을 일깨워주는 사람입니다
진짜 어른은 뒷모습으로 배우게 합니다
따라오라고 하지 않아도 따라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지속적인 에너지를 주며
인생 구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꾸미지 않은 행동이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음미되면서 말이죠
때론 시간의 때를 부끄러워하며
인생 본질을 향해 다시 일어서게 해 줍니다
살던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대로 살수 있게 용기를 주면서 말이죠
사회와 문화가 있어 온 이래 인성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불변의 화두인데요
인성 함양은 교육을 통해 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교육이라는 말 속에는 '교육하다'와 '교육받다'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둘의 상호작용의 균형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고
특히 '교육하다'가 간접매체에 의존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의 구조나 개인의 과정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시선은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으나
세상을 향한 안정적이고 호혜적인 태도는 개인의 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의 미숙하고 빈약한 삶의 방식과 태도는
인자한 육성과 가슴에 남는 체험이 채워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 어느 지역의 온천물은 30년 전의 눈이 녹아 기반암 밑을 흐르며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과 지구의 에너지로만 온천물이 되는 것입니다
따뜻한 시선 속에서 할머니가 오늘 만들어 준 특별한 에피소드는 아이의 인생에 유유히 흘러
아이의 세상을 데울 수도 있겠습니다
수많은 인생의 퇴적물을 쌓으며 갈등과 선택의 순간에도 아이는 할머니라는 에너지와 그 기반암으로 너겁과 혼란을 걸러내며
세상을 슬기롭게 풀어갈 듯합니다
꼰대의 바로미터를 희화화하는 세상
저는 오늘 진짜 어른을 만났습니다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견고한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