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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Mar 05. 2023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시를 읽습니다




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건 아닙니다, 넓은 모자


아래 있으면 안심이 되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 있던 거지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를 들으며 날이 어찌 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어느 구석 어느 틈에 있어도 보석은 빛이 나기 마련이다

4년 전 나는 이 시를 신문에서 발견했다

안개 걷힌 시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삶이 말갛게 보였다

현실 같은 시가

시가 된 현실을 음미하게 했다

누군가의 의미 속이라면 그 어떤 현실도

가치 있고 아름답게 울리는

시의 위대함을 경험하게

이 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시를 쓴 사람이 울라브 하우게가 아니라

꼭 자신이 생각하고 쓴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공감력과 몰입감과 흡인력이 매우 크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호하고 막연한 언어들의 군무

소통 없는 자폐적 시가 시의 주류로 호기가 꺾이지 않는 것에

나는 늘 답답하고 불만스러웠다

구체적 삶이 짐작되지 않는 관념적인 시

추상적인 파격과 파괴가 왜곡을 부르고

그것들이 지나치게 정당화되는 시의 현상에 질려

순일하고 담백한 시를 동경하고 있던 터였다

그때 희망처럼 울라브 하우게가 찾아왔다

그리고 하우게의 시는 나의 인생시가 됐다



울라브 하우게의 언어의 기둥에선 나무 냄새가 난다

색깔은 바랬지만 시간의 연마로 웅숭깊은 지혜의 향기가 난다

무엇으로도 포장되지 않은 인간 본연의 냄새

평화와 안온으로 깊이 의지하게 하는

부모의 살냄새, 고향의 살냄새가 난다



이 시는 공기처럼 마셔진다

모두의 추억처럼 친근하다

순순히 시간을 이해하고 바르게 바라보다 보면

인생을 꿰뚫는 현자의

담담한 시선 같은 것이 생기는 걸까?

순수하고 진실되게 언어의 능력을 발휘한

울라브 하우게의 시가

그와 같은 삶의 태도를 지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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