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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Jun 18. 2023

디저트를 먹으며 죽음을 말했습니다

당신의 결정된 미래는 무엇입니까?


내일 친구와 밥을 먹기로 했습니까?

어떤 사정으로 그 약속은 취소될 수 있습니다

다음주부터 3일 동안 비가 예보되어 있습니까?

날씨의 변덕으로 어쩌면 맑을지도 모릅니다

내년 5월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합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 참석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25년도 하반기 우대 채용 조건을 노리고 있습니까?

우대 조건이 변경되어 취업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2028년 은퇴 후 세계 배낭여행이리는 버킷리스트를 위해 목돈을 모으고 있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의도치 않은 문제에 부딪혀 미뤄지거나 취소될 수 있습니다



미래는 결정된 길잡이가 아닙니다

언제 어떤 선수를 칠지 모릅니다

불확실성이 잠복된 무수한 갈림길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실현되고야 마는 미래가 있습니다

결정된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냥 맞이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엄마는 독거 노인입니다

아버지가 폐암에 걸려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어머니의 눈물겨운 시간의 고투가 있었습니다

연세나 건강 상태가 아버지보다 나을 게 없었지만

세월에 틀어지고 녹슬고 무너져 내린 당신의 몸이 여전히 희생을 감내했던 것입니다

5년이란 간병 시간은 남편과 자식을 위한

또 하나의 희생이었습니다



완치판정이란 병을 완전히 낫게 했다는 최종 판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장차 암발병 걱정 없이 자연사를 보장한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의학적 기준의 표현이라는 걸 곱씹게 됩니다

암환자의 가족에게는 그저 희망뿐인 단어였는데 말입니다

한 치 앞을 몰라 안도했고

한 치 앞을 모르면서 웃었습니다

완치판정의 기쁨은 가혹하게도 고작.. 

고작 1년이었습니다

혈액암으로 전이된 암세포가 아버지의 온몸을 뒤덮었다는 경악스런 미래가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삶을 정리할 호스피스 병동이나 요양원을 알아보라는 병원의 권고에 아버지는 강하게 도리질했습니다

집에서 돌아가시고 싶다고요



뜨겁게 부활한 생의 의지에 미래는 통렬한 조소를 날렸습니다



고립무원의 고통스런 시간이 분명합니다

허망함과 쓸쓸함의 좌절에 지치셨을 겁니다

말해 뭣하겠습니까! 입만 아프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를 부축하다 두분이 함께 바닥에 나뒹굴기도 했다니 말입니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뿐만이 아니겠지요...

자식 다 필요없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멀리 떨어져 먹고 사느라 띄엄띄엄 얼굴 비쳤다 입을 놀리겠지요

부모 앞에선 자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도리없이 갖은 애를 쓰는 엄마가 딱하셨는지

사망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지 6개월만에

아버지는 세상을 비우고 육신을 거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달빛이 되었습니다

기품 있고 정신 맑기로는 죽음 앞에서도 아랑곳없던 분이었으니

교교한 달빛이 되신 겁니다



시간의 산을 넘느라 육신은 휑해졌고

맏며느리로 산 세월에 사회문화적 재가 되었고

죽을 힘을 다한 배우자의 간병과 이별이 심신을 고갈시켰으니

죽음과는 이미 일촌이 돼 버렸는지 모릅니다

엄마는 그렇게 독거 노인이 됐습니다





어버이날 동생과 고향을 찾았습니다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 받은 후

여느 때처럼 엄마는 이웃의 근황을 풀어 놓으셨습니다

바쁜 후손들의 마음씀이 노인들은 황송한 듯

어느 집 어느 자식의 성대한 효심을 넉넉하게 칭찬하시고는

이내 우리 자식만한 사람도 없더라는 낯뜨거운 포상의 말을 순서처럼 건넸습니다

참외를 한 조각 드신 후

고향을 떠난지 하도 오래 돼 기억해 낼 수도 없는 어느 이웃의 딱한 사정에 엄마는 단번에 몰입했습니다

가난해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출가한 딸

정신지체 아들, 경제력 없는 노인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는 늙은 엄마이자 아내.

경제력과 가족애는 이미 붕괴된지 오래이나

그 누구도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엄마는 당신이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듯

산자와 병자 모두에게 참혹해했습니다

엄마는 결국 이 말에 도달했습니다

"연명치료는 하지 마래이~"



짧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일상의 이런 저런 경험이 죽음을 곱씹게 한 듯했습니다



20~60대 성인 남녀 절반이 ‘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100세까지 살고 싶다’가 2명 중 1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세까지 살기 싫다'는 응답자도 있습니다

응답자 49.8%가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간병치레와 경제적 불안감이 장수를 두려워하는 큰 이유였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만이 아님을 경험해 본 사람은 잘 압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수명에

당신은 심리적 저항감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죽음은 또 하나의 삶의 모습입니다

죽음에 대한 태도는 그 사람의 인생관이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증명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랬듯

어떻게 죽을 것인가조차 스스로 선택해 밝히는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정신대통령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딸의 마음에 차 있던 엄마의 모습이 그냥 그렇게 흘러나왔습니다

어쩌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는지도요..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얘기합시다'라는 책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한 얘기는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물꼬를 튼 엄마는 내처 걸었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자식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존엄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런 치료 효과 없이 무의미한 생명 연장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당신의 남은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우리는 듣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의 유산인 듯했습니다





죽음은 당신의 계획을 묻지 않습니다

묻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죽음이 옅은 기지개를 켜며 언제 다가올는지요

어떤 것으로도 죽음을 되받아칠 수 없는 그 때가요



엄마는 그 날이 내일이어도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의 삶은 없어도 괜찮다는 엄마의 표정을

요즘은 가끔 보고 맙니다

그래서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결정이

어버이날 그렇게 단호했는지 모릅니다

완치판정의 가면처럼 번복되지 않을 죽음에 대해서요



무엇에 의지해 허리를 펴야 하는

꼬부랑 할머니지만

그것이 죽음을 생각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파스와 약으로 몸을 움직이지만

그것이 죽음과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결정된 미래가 죽음이라면

자는 듯이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디저트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디저트는 행복한 마무리니까요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행복한 마무리요

그것이 엄마가 바라는 행복한 죽음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죽음을 두고서도 그루터기를 내밉니다

아린..이 아린 자식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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