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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Aug 05. 2023

글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작가님은 어디쯤에 계세요?



첫번째는 구성상의 이유

쉽게 말해 특정 독자의 취향을 배려한 거죠

중간에 나오는 이 묘사 덕분에

독자는 흥미를 갖고 끝까지 읽을 테니까요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심하게 반대했어요

이 묘사가 소설의 격을 크게 떨어뜨릴 거라고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죠

다만 제가 그걸 원했다기보다

말이 그걸 원했어요

그게 또 다른 이유예요

말의 배치는 다른 말과의 관계에서 결정되죠

말이 말을 원하는 거지

제가 말을 원한 게 아니에요

완성된 말의 순서가

제 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둘 뿐이에요

전 단지 글과 글을 매개로

표현을 극대화할 뿐

제 경험이 개입될 여지는 없어요

글은 독자의 경험에 울림을 줄 뿐이죠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우연과 상상》 제 2화

<문은 열어둔 채로>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각본 연출을 맡아 202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각본의 힘은

신선하고 놀라워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장악 당하고 맙니다



여러분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십니까?

독특한 영화의 이 대사가 글쓰기의 본질을

새롭고 명료하게 일깨워

저를 비춰 보게 됐습니다




감사하게도 제 글을 구독해서 읽어주는 몇 분이 계시긴 하지만

제게 특정 독자가 있다고 제 스스로 특정해 말하는 것이 오버일 수도, 민망할 수도, 지나치게 천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이 영화의 대사처럼 특정 독자의 취향을 배려해서 글을 쓴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글쎄요.. 혹시 미래에 그 의미를 되새겨볼 상황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에 특정 독자를 배려할 글실력의 여유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제 글쓰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삶의 스토리와 정보가 풍부한 에세이의

흡인력과 인기도를 익히 알면서도 저는 시를 만지고 있을 때가 많으니 말입니다



시는 평균적이지 않습니다

시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시는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시는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시는 보편적 상식이 아닙니다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경험과 직관과 통찰은

많은 페이지를 가지지 않는 시에서

더욱 요구되고 강조되는지라

시가 가벼운 인식으로 쓸 수만은 없는 장르임에

무게와 가치를 둡니다.

그러나 현실을 뛰어넘어야 하는 해맑은 시적 창의가

생활 밀착형의 소통과 공감이 선호되는 장에서 기꺼이 선택될 여지는 습니다



다양하고 엄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 현대인의

개별적 경험을 비교, 반성, 유추하며

마침내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는

일상의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정보가

뒷받침 되지 않기에

시를 읽고자 하는 동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는 삶의 소통과 공감이 목표입니다

상대적으로 주어지는 개인의 경험과 가치가 글에 개입해

독자의 공감을 이끌고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자신을 표현 전달 확장할 수 있는 이 시대의 글의 논리를 알면서도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고집이 있어 가성비 없는 시를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정 계층을 배려한디는 요건에서 저는 미달입니다




현실의 밀도와 온도와 무게를 지키고 승화해

어떤 영혼을 터득시키기도 합니다

어떤 영혼을 정화시키기도 합니다

현실의 장벽을 유예시키거나 물리치게도 합니다

현실을 높은 차원으로 이탈시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언어입니다

말입니다

글입니다



여러분은 글을 어떻게 쓰고 계신가요?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쓰시나요?

아니면 특정 대상의 취향을 배려해서 쓰시나요?

글의 질서는요?

소설이든 에세이든 시든

하마구치 류스케의 언급처럼

과 말의 배치가 관건인데 말이죠



사람의 글쓰기란 최초 원고부터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글을 쓰기란 불가능합니다

초고에 완결된 글이란 없죠

글이라는 것이 네비게이션 정보처럼 얻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으로 끌고 가야 하기에

고민, 갈등, 한숨과 함께 질서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글쓰기의 운명입니다



글을 세워나가고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은

각자 있을 텐데요

저의 경우는 주제보다 소재로 글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번쩍 섬광을 주는 소재가 있습니다

꽂히게 하는 소재가 있죠

그러나 소재가 글쓰기의 단초가 되긴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주제를 뚜렷하게 살리고

거기에 맞닿기 위해선

어휘를 부리고 배치해야 합니다

그것이 글쓰기의 능력이겠죠



때론 어떤 말이 실마리가 되어 흐름을 뒤집고

새롭게 구성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세워 놓은 구성이 말과 글을 지배해 나가기도 합니다



말이 말을 원합니다

그러나 말의 날뜀을 조심해야 합니다

옆에 있는 말과 어울려야 합니다

말이 원한 말이 이끼가 끼어 있어도 안 됩니다

말이 흘러야 합니다

말이 먼 산을 바라봐도 안 됩니다

빨리 포기하고 다른 말을 찾는 게 좋습니다

말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사슬이 글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말과 글을 정복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맛본 적이 없습니다

수사학의 힘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언어와 배치의 불완전함에

수시로 무능을 인식할 뿐입니다

글쓰기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혼란과 방황의 글쓰기에서

스스로를 격리시켜 봄직도 한데요..



그러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조지 오웰이 그 이유를 대신 설명해 줍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자기 과시에 대한 순전한 이기심에서 출발하며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쓴다




조지 오웰이 말한 그 어디쯤에서

구름사다리를 타고 있는 사람이

저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들어디쯤에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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