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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May 26. 2024

꽃꽂이는 잘 사는 일일지 몰라요

기억하리라, 꽃들의 찬란한 말이여




별일 없이 남편이 꽃다발을 사 왔습니다.

장미, 국화, 금어초, 유칼립투스가

뚜렷한 자세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러넌큘러스, 리시안셔스, 델피니움이

새로운 감각을 자극합니다.

신문지를 깔고 가만히 눕혀 철사에 옥죄인 애들을 풀었습니다.

금어초, 라넌큘러스의 볼품 없는 잎을 훑어내고 물속에서 줄기의 끝을 비스듬히 잘라 길이를 다듬었습니다.

해체와 덜어냄 후에야 새로운 시공간에 새롭게 서게 됩니다. 나머지 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도 다르지 않습니다.

꽃다발로 편집된 꽃이 이번엔 꽃꽂이로 편집됩니다.

아름다움의 향유를 꽃들이 눈감아 주는 듯합니다.

꽃을 만지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편애도 고정관념도 아닙니다. 무의식이라 생각합니다. 큰 꽃병을 장미가 먼저 차지하게 합니다.

그리고 회녹색 유칼립투스 세 줄기를 꿋꿋한 대로 세 곳에 세웠습니다.

부피가 큰 금어초를 꽂으니 꽃병이 얼추 찹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청보라색 델피니움이 늘씬하고 청아합니다.

웨딩부케로 충분히 끌릴 만합니다.

마지막으로 국화와 봉우리 진 라넌큘러스, 리시안셔스에게 각각 제자리를 잡아 주었습니다.

단촐해진 초록 줄기와 물이 싱그러워 보입니다.

실내에 향기로운 빛이 탄생했습니다.

나만의 꽃이 모인 화병이 며칠 작은 정원이 돼 줄 것 같습니다.

제 식의 꽃꽂이가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아름답게 덮는다'

이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신박하게도 유칼립투스의 꽃말인데요.

추억입니다.

지나간 시간의 문이 스르르 열릴 때면 당신의 영혼 앞에 서 있는 것이 있습니다. 줄서기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움과 흐뭇함으로 시간을 덮으며 지금의 가슴으로 다시 머물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따뜻한 시간으로요. 의미 있는 시간으로요.

그것이 추억입니다.




꽃을 만지고 화병에 물을 채우고 꽃을 꽂고..

한아름의 꽃의 이유가 그 만큼의 삶의 이유가,

한아름의 색깔이 한아름의 향기가 시간을 덮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만나지는

그 순간의 꽃이 어느 순간 순간 행복이 될 것입니다.

별일 없이 꽃을 받은 이 날을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억할 것입니다.

유칼립투스의 의미처럼 우리들의 뻔한 일상이 어지간히 고양된 날로 문득 나를 찾아와 시간을 덮을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뻐끔거리는 금붕어를 닮았다니 금어초도 말이 많아 보입니다.

말이 많으면 수다쟁이고 주제넘게 참견까지 하게 되겠죠.

줄기를 따라 피어난 꽃들이 많은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꽃수에 걸맞은 잎과 굵은 줄기가 수다를 샘솟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 오늘의 모습, 금어초의 꽃말일지 모릅니다. 수다쟁이일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사냐고, 너답게 살라고 참견을 해댑니다.




평온한 생각을 오래도록 같이 할 수 있는 사이라면

평생의 유대감으로 이어가고 싶겠죠.

이런 이상적인 관계라면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그렇다면 진실되고 복된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평온한 생각의 유대를 향해 너릍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며 고민하고 갈등하며 고쳐쓰기를 합니다.

흰색 리시안셔스 꽃말의 의미는 깊습니다.




왜 당신은 나를 싫어합니까?

저를 헤아려 주세요

왜 당신은 당신 자신을 돌보지 않습니까?

당신 자신을 살펴 주세요




델피니움 꽃말은 당신의 행복입니다





꽃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은 꽃을 곰곰히 생각합니다

꽃의 이름을, 모양을, 색깔을, 향기를, 생육특징을..

사람은 꽃으로 사람을 비춰봅니다

꽃으로 인간을 말합니다

꽃에선 사람의 정서가 샘솟습니다

꽃에선 사람의 감정이 피어납니다

꽃이름, 꽃말이 그런 게 아닐까요?




꽃에는 이 핍니다




어떤 찬사와 충고도 가능합니다.

꽃에게는 인간 본질과 결함을 폭로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꽃에게 따지거나 틀어져 꽃과 척질 일은 없을 거니까요.

아름다움을 물리치겠다는, 아름다움을 없애버리겠단 불가사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꽃은 실패가 없습니다.

오히려 꽃의 의미에 애착하게 합니다.

꽃말의 의미영역은 인간의 현상이고 지향입니다.





꽃과의 교감은 위로를 줍니다

꽃말과의 교감은 지혜를 줍니다




델피니움은 그리스어 'delphin(돌고래)'에서 유래한 것으로 꽃봉오리가 돌고래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이름의 어원을 알고 나니 꽃에서 푸른 바다의 돌고래가 보입니다.

배를 이끌며 쾌속질주하는 돌고래, 써핑하는 돌고래, 놀이를 하며 물밖으로 튀어오르는 돌고래, 각각의 목소리로 소란스런 수다쟁이 돌고래..




꽃꽂이를 한후 이틀이 지나자

델피니움 꽃잎이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작은 자극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떨어집니다

활짝 피었다 쉽게 허무가 돼 버리는 행복

그 행복이 몹시 가냘프고 약합니다




굳센 행복을 다 알기도 전에

우리는 종종 다른 행복을 찾느라 어디론가 떠밀려 가기도 합니다.

가냘픈 행복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 당신의 행복이라고 델피니움이 일깨웁니다.

자유와 활기를 돌고래와 손잡으라고 합니다.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솟아올라 허파에 공기를 가득 채워 보라 합니다.

리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삶의 포인트를 실감하는 일에 좀더 집중하라고 돌고래가 타이릅니다





조선전기 수양대군이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 설법을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불교경전이  있습니다. 석보상절입니다.

석보상절에 의하면 아름(아람)답다의 '아름'의 의미가 '나'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망설임없이 아름답다의 의미를 나답다에 닿게 합니다.

'아름답다'는 곧 '나답다'입니다.

나의 근원을 묻고 답하는 나다움의 고유성,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그것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기도 합니다.




나답게 살아갈 일입니다

아름답게 살아갈 일입니다




지나치거나 못 미친 것들이 덧없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럭저럭 지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하며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기자신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그 빈 것을 고민하며 균형을 잡고 싶습니다.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다움 아닐까요?

나다움을 찾는다면 일상의 행복과 아름다움까지 맛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꽃다발은 누군가를 향한 것이고

꽃꽂이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 순간 삶이 주는 꽃다발

제 방식대로 꽃꽂이를 해 봐야겠습니다

꽃꽂이를 하며 한발 더 나아가 꽃의 의미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 꽃꽂이가 아름답게 인생을 단련시킬 수 있도록





옥죄인 철사를 풀고

꾸준히 해체하고 덜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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