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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Mar 31. 2024

환기할 시간입니다

인생 편곡, 아파시오나토



오후 햇살마저 지나간 거리에

오랜 기억들은 내 곁에 찾아와

뭐라고 말은 하지만 닮아갈 수 없는 지난날

함께 느꼈던 많은 슬픔도 후회하지 않았어

내게 돌아와 담고 싶은 기억 속으로...





오후 햇살이 지나가고 석양이 서서히 노을로 드러눕기 시작하면 우린 돌아가야 할 곳인 듯 문득 어디쯤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아련히 흩어진 기억들과 조우한다.

잔물지는 노을 속은 하염없고

신의 품인 듯 존재는 그리고 기억은 서서히 객관화 된다.

고통이지만 창조였던 주황을 만나고

직관과 자존이었던 개성의 보라를 만난다.

신선하면서도 부드러운 핑크

풍요롭고 다채로운 에너지 노랑이 펼쳐진다.

어떤 호기심, 어떤 모험심, 어떤 상상력, 어떤 의지, 어떤 열정, 어떤 유행, 어떤 영상..





붉게 타는 노을 전투기 밑을 바람처럼 질주하는 미첼대위

두둑한 젊음과 날렵한 바이크는 노을처럼 찬란하고 열정적이다.

하늘과의 운명을 망설일 수 없는 콜사인 매버릭

본능의 비행은 오금저리는 감동을 주지만

그래서 그는 위험하다.

그러나 그는 숨막히도록 멋지다.

젊음의 질풍과 우수와 민간교관 물리학자 찰리와의 사랑..

그 순간 영화를 숨막히게 완성하는 것이 있다.

탑건 OST

Take My Breath Away

'내 숨을 멎게 해요'





숨을 멎게 할 전율을 언제나 기다리지만

숨이 멎을 감동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야 할 시간보다 돌아봐야 할 시간이 많아진 나이

다채롭고 신선한 감각의 마법을 갈수록 잃어버리고 있는 나이

이 나이를 벅차게 끓어오르게 할 것이 얼마나 될까?

일상의 행복한 파격은 별로 없다.





가족들의 생일은 열심히 챙기지만

자기 생일이라고 미역국 알뜰히 끓여 시원하게 마시는 여자들은 많지 않다.

명색이 환갑이지만 최선의 말과 행동으로 주인공에게 황금옷을 입혀주는 큰아들이 당장 곁에 없으니 앙꼬 없는 찐빵 같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후한 선물과 축하금, 둘째의 사랑스런 축하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남편의 그만저만한 애씀이 있었지만

쓸쓸해지는 여운은 어쩔 수 없다.

설령 한바탕 번지르르한 회갑잔치를 했더라도 채워지지 않을..

육십이라는 이름표의 환기 때문일까?





어른이어야 할 나이

그러나 어른이 되지도 못한 나이

시간은 빨리도 사라지는구나

푸르고 건강한 날이 지나간다고

시간을 탕진한 건 아니지

그러나 나란 사람은 외롭다

남편에게 그렇게 해 주었듯

나도 생일 이전 이후 일주일을 회갑 주간으로 정해 야금야금 즐기기로 했다.





우연찮게 콘서트 하나를 발견했다.

한때를 장악하며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던 디바들의 공연.

이름만으로도 뜨거운 팬덤을 이끌던 아이콘들의 힙한 구성.

레트로의 취향을 저격하며 올 것이 왔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당장 예약했다.





그런데 가만 있자..

그녀들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

보이지 않아도 찾지 않은 지 꽤 됐다.

케이팝이 미친듯 세계를 이끌고 국내외 도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왕성함과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다.

그녀들이 사라졌다.

그녀들의 무대가 사라졌다.

화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녀들 얼굴에 쌓인 세월이었다.

평균 나이 60.5세, 무대 합이 155년

4인조 신인그룹, 골든 걸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들이 낯설게 느껴져

돌이킬 수는 없겠지 우리의 숨가쁜 지난날..

(이은미 기억 속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은 슬퍼하지 말라고 했던가

세월을 닮아가는 일상

그런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일상

시시각각 인생 도전 받으며 복받치기도 하고

때때로 그것이 낯설어

충혈된 노을처럼 아득해지는 순간

운명일지라도 서글픈 건 서글픈 거다

그러나 그 서러움 속에서도 우리는 가끔 부드러워지고 꿋꿋해진다

노래로, 노래 안에서 우리는 한다

인간의 또 하나의 운명

삶과 노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노래..





아이돌그룹이 대세인 시대적 경향과

최정상 케이팝 프로듀서 박진영의 아이디어가 그녀들과 만났다.

깜짝 걸그룹, 4인 4색 보컬리스트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

혼자의 깊은 신뢰의 무대가

함께의 도발적이고도 신선한 무대가

나이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단독 보컬들의 하모니에 대한 우려를 깨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창력은 연륜에 손색이 없었고 원숙미와 세련미는 오래된 자신들을 새롭게 울려냈다.





콘서트장에서 주워들었다.

골든걸스라는 프로그램이 KBS2에서 방영됐다는 사실을.

때 지난 스타의 컴백 과정을 다룬 것이라는 걸.

콘서트 사이 사이는 그 여정의 고백이었다.

혹독한 훈련 과정의 에피소드는 프로듀서 박진영에 대한 친근한 원망의 드립이었지만 결국은 그 과정을 이겨내고 마침내 무대에 섰다는 극기의 소회였다.

그녀들의 춤과 노래의 의미는 강렬했다.





인순이의 서른 즈음에

이은미의 기억 속으로

신효범 난 널 사랑해, 박미경 이브의 경고..

가슴 밑을 때렸다. 때론 표정을 상기시키며 따라가지 못할 흥을 줬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환호성은 커졌다.





줄기차게 자신의 한계를 실험하는

자유로운 음악의 고수, 주황 인순이

명랑함과 활기, 가창의 재능과 관록이 느껴지는 상여자, 노랑 신효범

순수하고 팝한 귀여운 핑크 박미경

까다롭게 추출한 프리미엄급 커피 같은

감성의 카리스마, 보라 이은미





주황 노랑 핑크 보라는 화려했고 빛나는 개성이었다.

분출한 에너지는 뜨거운 햇빛처럼 관객을 비추었고 노을처럼 그윽하게 수렴했다.

그리움과 즐거움으로 출렁이는 기억들은

문득 어디쯤에 돌아가 있었다.

서로의 세월과 노래의 맞장구는 아파시오나토였다.

숨을 죽였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무대와 하나가 돼 지글지글 끓었던

옆좌석 여인이 팔찌 찾는 작은 소동을 벌였다.

금팔찌라는 현실은 내 의자 밑 저 안쪽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다.





인생의 건재함은 반추와 반전에 있다.

반추를 통한 자신과의 깊은 소통

고인 일상을 박차고 나가는 반전

반추와 반전의 깊이와 넓이에서

우리의 인생 성장하며 역전의 자부심을 만나기도 한다. 그녀들처럼.

인생을 나이로, 숫자로 단정할 수 없다.

나이의 가치와 재미는 시대의 방향과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는 듯하다.

반추와 반전 그리고 스스로의 역전을 꿈꾸는 일

그것이 마땅한 육십의 일이라는 듯

박진영과 골든걸스가 멋진 무대로 보여주었다.





탄성을 지를 나이는 결코 아니지만

삐걱거리고 사그라드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꽃 피울 수 있는 싱싱한 의욕의 나이임을 콘서트를 통해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육십을 배웠다.

육십에 해야 할 일은

나이의 말뚝을 뽑고 자신을 노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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