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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Mar 10. 2024

다정한 이웃이 되어 주세요

늙음에 도망치지 않았더니 지금이다



별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 하루가 특별하다 싶을 때가 있어요.

아무일 없어서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자식들의 마음이 비슷할 텐데요.

오늘은 제가 자식들을 대신해서 직접 안부를 여쭐 수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타지에 계신 자제분들 오늘만큼은 안심해도 좋을 거 같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희 3남매에게 오늘은 좀 특별한 날입니다.

엄마라고 부르면 오냐라고 대답할 엄마가 곁에 계셔서 특별하고

평생을 동고동락하신 친구이자 다정한 이웃인 어르신들과 늘 동분서주 애쓰시는 이장님을 모시고 엄마의 구순 잔치를 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기쁩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조촐한 식사 자리에 함께 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제가 추억하고 있는 고향의 정이 계속 살아있어 평생을 사신 이 곳에서 여생을 함께 편안히 이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차린 건 없지만 꼭꼭 씹어 맛있게 드시고 잠시라도 즐거운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의 생신은 설 명절 7일 후다.

주말을 끼고 당겨서 하게 되면 6일 후가 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오랜 시간 엄마의 생신은 설 명절에 묻어 설 명절에 묻혀 태어난 날을 충분히 제대로 축하받지 못 했다.

명절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의 재귀향은

자식들을 힘들게 할 뿐이라며 엄마가 극구 만류했다는 것이 생신 제날을 챙겨 드리지 못 한 알량한 핑계라면 핑계다.

설 명절에 찾아뵙고 미리 생신 축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구순은 일요일이다.




이장님과는 통화를 한 상태니 이장님께 방송을 부탁해도 됐다. 동네에서는 보통들 그렇게 한다.

그러나 집안 행사의 초대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장님이 참석 독려방송을 해 주실 수는 있으나 가족이 직접 초대하는 게 예의다.

오면 오고 말면 말고의 초대는 엄마를 위해서도 동네 분들을 위해서도 성의가 없다 생각했다.

또 직접 전화를 드리는 건 참석 인원을 파악해 식당을 예약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대충이라도 인원 파악을 해야 난감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오빠는 우리에게 일을 맡긴 터라 큰사위인 남편이 전화부를 보며 일일이 전화를 드렸다.




귀농한 집이 몇집 있어도 늘 작은 동네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통화해야 할 인원이 많았다.

전화번호부를 각각 3장씩 프린트해 펼쳐 놓고 통화여부와 참석여부를 하나하나 표시하고 어떤 번호가 한 가족인지를 묶으며 가구수도 파악했다.

돌아가신 분의 전화번호도 있었고,

아들 딸 또는 사위의 번호가 한 가구에 중복되어 있는 경우도 여러 집 있었다.

씩씩하고 신나는 마을은 어디 가고 이젠 관심과 보호자가 필요한 초고령 마을이 됐다는 현실이 새삼 피부에 닿았다.

초대전화를 받은 분들은 좋은 일 한다는 인사로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요 예배를 가야 해서, 요양보호사라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그날 다른 일이 있어서와 같은 불참 이유를 밝힌 분도 계셨다.

전화를 받지 않은 집도 여섯쯤 됐다.




각 댁으로 전화를 드리기 전 이장님께 몇 명쯤 참석할 것 같냐 여쭸었다.

농한기라 30명 족히 될 거라 하셨다.

통화의 결과는 이장님의 말씀과 얼추 비슷했다.

참석 인원이 36명으로 파악됐다.

팔순잔치에 모시긴 했지만 기회 닿을 때 따뜻한 식사 한끼 동네분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 컸다.

그러나 명분없이 대접하는 식사가 자칫 잡음을 낳을 수 있어 하지 못 했다. 이번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다른 일이 있어서 라는 몇 분의 말은 지나쳐지지 않았다. 이만저만한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드문드문 접한 얘기가 있어 개운치 않은 유추를 하게 되니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대립과 분열로 작은 시골마을에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을 안 지가 좀 됐다.

사람 사는 곳이니 이 곳 또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고 집단의 본성이니 어쩌랴

그러나 마을이 두 쪼가리는 아니었다.

각성바지의 마을이었지만 이기심과 질투로  이렇게 무례하지는 않았다. 중재가 필요할 정도의 큰 바위가 마을을 가로막고 있었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개탄스러운 일이었다.

고향의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아니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새롭게 빚어지는 갈등이었다.

연합과 대립이 예리하고 선명하다.

강렬한 스토리는 도대체 이 마을에 어울리기나 한 건가 싶다.

하나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상처를 주듯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끼리의 관계는 어느 순간 결핍이었고 흉했다.

공동생활 어디든 트레바리는 있는 모양이다.

판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서로를 트레바리라 할지 모른다.

각자가 보고 듣는 것은 관점이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격렬한 생각은 서로의 감정에 의지하며 핵융합처럼 거대해지고 무서워진다.

비뚤어진 연대감은 과잉되어 상대를 할퀸다.




자연에서 살아도 자연의 가르침은 별개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일 뿐이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가슴 뛰는 전성기의 마을은 옛이야기다.

따뜻하고 미덥던 고향은 점점 이탈하고

나를 키운 고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사막화 되고 있는 느낌이다.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

이젠 공리를 위한 목소리로 화합하길 바랄 뿐이다.

요란하게 외치는 시대적 걸망에 이 작은 마을이 숨막히게 갇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순박하고 다정했던 마을을 향한 간절함은 성장판이 닫힌 아이의 순진한 생각일까?

질끈 눈감고 있어야 할 게 많다.

대화가 안 되는 제멋대로의 세상에서 뒷방노인들은 그저 바라보며 미약한 철학자가 될 뿐이다.





작사, 작곡 모두 남편이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를 궁리했다.

덩달아 나도 리듬을 탔고 마음은 북적였다.

높은 연세들이니 메뉴는 부드러워야 한다.

이왕이면 기운 돋우는 음식이면 더 좋겠다.

오리백숙으로 메뉴를 정했다.




식당 선정은 3일 동안 우리를 괴롭혔다.

남편과 함께 인근의 오리백숙 전문점을 눈이 빠지도록 검색하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픽업할 차량이 문제였다.

버스 타고 내리는 것도 부축해야 할 판에 걷는 건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음식이 마음에 들어 전화를 해도 대부분 차량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지인 찬스를 썼지만 차로 1시간 거리였다. 노인분들을 모시고 그 거리는 무리다.

결국 음식 솜씨는 있으나 오리전문점이 아니어서 후순위로 밀렸던 동생 친구의 식당에서 엄마의 구순잔치를 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사도 하고 있어 45인승 버스지원이 단박에 해결됐다.

마을에서 버스로 5분 거리다.

이제 안심이다.




아침 6시에 떡케이크를 받자마자 고향으로 출발했다. 도착전 경유지에서 꽃과 플래카드를 찾아 준비를 위해 식당으로 직행했다.

구순 축하 플래카드를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 뒤에 드리웠다.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올리고 도착시간을 계산해 떡케이크에 숫자초와 하트꽂이를 꽂았다.

설레는 이 준비를 엄마는 전혀 모르신다.




엄마가 지팡이를 짚고 버스에서 제일 먼저 내리셨다. 그리고 천천히 부축을 받으며 어르신들이 내리셨다

허리가 굽어 어린 아이의 키처럼 작았고 갓난아기의 걸음마처럼 힘겨웠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삶

아득하고도 짧은 세월이 보였다

늙음에 도망칠 겨를이 없었다

도망치지 않았더니 지금이다

살아온 삶의 값은 이런 것일까?

남은 생이 가팔라 보였다

가슴이 쿵한다

부음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죽음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다

힘든 육신을 마무리한 죽음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다




입꼬리를 배 모양으로 살짝 올렸다.

엄마를 잠시 중앙의자로 모셔 생일송과 촛불끄기를 하고 참석한 분들에게 인사를 했다.

오빠에 이어 내가 간단하게 인사를 올렸다.

입담 좋은 남편이 사회 아닌 사회를 보다가

좌중을 둘러보며



오래 사시라고 오리

백살까지 사시라고 백숙

식사는 오리백숙으로 준비했습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마을 이장님이 걸어나오셨다. 마을사람들이 마음을 모았다며 선물이 담긴 예쁜 종이가방을 축하의 인사와 함께 건네셨다.




일요 예배와 출근의 이유로 불참석을 알리셨던 분들까지 3팀이 식사 시작전 감사하게도 참석해 주셨다. 우리 가족까지 앉으니 식당에 비어있는 의자는 별로 없어 보였다.

염려했던 오리백숙은 훌륭했다.

식탁을 다니며 국물 보충을 부탁하고 음료와 술을 놓아드렸다. 그리고 후식으로 떡케이크의 떡을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말끔한 용모의 한 분이 가족 테이블로 다가왔다. 일어섰다. 처음 뵙는 분이었다.

"올해 몇이지?"

"그새 환갑이 돼 버렸어요."

내 대답은 철없이 유쾌했다. 그 분위기에서 철이 없어야 하는 게 맞다.

엄마가 옆에서 거드셨다.

우리 텃밭 위에 산소! 명절 때면 성묘하러 오는 부산 사는 누구였다. 아 그분이 이분이구나.

"딸이라고 도회지로 나가 일해야 했고 진학을 하지 못 했던 그 시절에 대구로 유학 보내는 건 특별한 일이었지. 부모님한테 감사해야 돼.

하얀 칼라의 교복 입은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지!"

올케언니와 여동생이 이 얘기는 남편이 들어야 한다며 분위기를 치켜올렸다.




식사를 마친 분들이 엄마에게 다가와 오래 사시란 덕담을 했고 더 오래 살아서 뭐 하냐는 엄마의 대답은 졸수(卒壽)의 의미이기도 했으나

서로에 대한 고마움의 말로 들렸다.

하단 오른쪽에 사랑스런 폰트의 복복(福) 자가 자수로 새겨진 수건과  맛있는 롤케잌을  답례품으로 드렸다. 미안해하면서도 다시 벙긋 미소들을 지으셨다.

엄마의 주름진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이웃사촌으로 형제애가 발휘되는 곳이 고향이다. 오늘이 그랬다.

과거도 오늘도 관계 속에서 피울 수 있는 행복이다.

서로에게 신세지고 베풀며 덕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

각자의 의욕이 서로에게 아름다운 메아리가 되는 그 순간을 꿈꾸며 살아도 지 않겠는가!




언 배 껍질처럼 검버섯 핀 얼굴들이지만

함께 오리백숙을 말끔하게 비웠으니 남편의 말처럼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지금의 건강 잃지 않으며.

엄마와 어르신들의 무사안일과 동네의 평화를 소망해 본다.

얼음장 밑에서도 시냇물은 흐른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흐르다 보면 봄이 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얼음장은 시간에 굴복할 것이다.

관계 속에서 내일이라는 기회가 또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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