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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Jan 15. 2023

당신은 누군가의 집이 돼 본 적이 있는가?

세상 부부들에게 하는 질문




언제나 마중나와 있는 시간을 따라 걷고는  

그 시간을 꼬박꼬박 배웅했건만

28년이란 시간은 머리에 얼굴에 그리고 몸 이곳 저곳에 부딪쳐 눈에 띄게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뺑소니를 쳤던 것일까?

이유 없는 설렘과 미지의 희망은 흰머리처럼 탈색된 지 오래고

비상벨이 몇 번 울리기도 한

28년 결혼생활의 곳곳은 눈가의 주름만큼 뚜렷하다.



우리는 꽤나 엇박자다.

정서도 생각도 그것들의 표현도 사뭇 다르다. 자라온 환경과 성격에서 공유 부분이 적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답답할 때가 많고 공감과 위로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대화의 희열을 맛보기란 더더욱 어려운 개체들이다.

감정을 적절히 계량화해 원만한 대화를 도모해 보려 하지만 이 부분은 둘다 서툴다.

맞지 않는 병뚜껑을 닫으려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자신을 느낄  때면

한쪽의 영혼은 탄식하며 금세 허공울 떠돌고 만다.

감히 '하나'가 되려다 실패한 도돌이표 전쟁은 지칠만도 하건만

여전히 당황하고 서로를 의아해하며 종식되지 않고 있다.

이즈음에서 갖게 되는 바람은

엇박자지만 부딪치지 않고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오른발 왼발인 듯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깔깔하고 폭발적인 각자의 에너지를 조금씩 덜어내면서 말이다.



어떤 일에서 28년은 명불허득의 전문가를 만들고도 남을 세월이건만

결혼생활 29년째를 맞고도 전문가는 커녕 여전히 초보일 뿐이라는 생각을 순간순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생기와 참신함을 잃은, 매너리즘의 독소까지 안고 있는 초보 아닌 초보라는 생각이 종종 나를 힘들게 한다.

크고 맑지는 않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은

금방 비워진 새 것 대신

미운정 고운정으로 닦아 보는 중이다.

세월에 삭아지는 부부라는 끈과 띠가 안타깝고 애처로워서 말이다.



잎이 떨어진 겨울나무가 여전히 머리 위에 새집을 이고 있다.

자신의 몸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듯..

줄기만 남은 메타세콰이어가 더 굳세 보인다.

굵고 선명한 줄기가 죄다 밑둥치 같아 보인다.

무거운 땅을 뚫고 저 건실한 지지대를

하늘을 향해 받치고 올리고 있으니..



녹  록    녹  록    녹  록...

힘들어 할 시간 없이 숨찬 현실을 강요하는

삶의 쇠수레바퀴를 남편은 오늘도 굴리고 있다.

어쩐지 남편이 겨울 메타세콰이어와 닮아 있다.

꿈을 걸어둔 내일의 활짝 벌린 팔을 향해  

매일 매일 시작의 힘을 내보고 있다.

밑둥치가 되어 굳세게 현실을 받치고서.



새집을 운명처럼 품고 가는 남편에게 숙연해진다.

그 모습이 때때로 가족을 고양시키고

파랗게 날 세우던 감정을 사소하게 만들어 버린다.



당신은 너무 가벼워

당신은 지나치게 무거워

당신은 좀더 깊이를 가져

당신은 좀더 넓어져 봐...



앞으로도 우린 이러며 살 것 같다.

엮인 인연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엮는 인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린 모두 애썼다.

벌어진 일, 벌여놓은 일이 많은

책임의 인연, 묵은 인연, 연민의 인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탈무드에 '남자의 집은 여자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의심 없이 보태고 싶다.

'여자의 집은 남자이다'

남편이, 아내가 서로에게 집이 될때

그 관계가 진짜 인연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집이 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누군가의 집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은 누군가의 집이 돼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누군가의 집이 될 수 있을까?

세상부부들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

우리는 이상한 부부일까?  

아니 어쩌면 평범한 부부일까?



누군가의 편안한 집이 되기 위해,

그리고 즐거운 집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환기시키고

온도를 맞추고

따뜻한 기를 채우며 살아야 할까?


 

지금처럼 자존과 의존과 책임을 넘나들며

부부의 연으로 계속 살아볼 수밖에 없다.

진짜 인연이면 좋겠지만 적어도 소비의 인연만큼은 벗어나야겠다는 새삼스런 반성이 결혼 29주년을 맞아 더욱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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