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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Aug 19. 2023

푸른 나무에 나는 가끔 작은 새로 날아간다(2)

시간을 만나다


고향은 아버지의 것이어서 따뜻하다



8월 뙤약볕은 어떤 방해도 없이

작은 농촌 마을을 팔팔 끓였다.

뜨거운 기운은 정수리에서 지글거리는

듯했다 

생명의 창조주이며 생육자이긴하나

한낮만큼은 자신과 맞서지 말라고

태양은 뜨끔하게 경고해 왔다

자연의 진실을 조언으로 또는 경고로

직감하고 경험하고 받아들여온 것이

농부의 본성이고 농촌의 생명력이었다

스스로 낭패 볼 일을 만들지는 않았다



투박한 된장찌개와 약오른 상추쌈으로

점심상을 물린 어른들은

햇빛이 수그러드는 시간까지 낮잠을 잤다

희붐한 새벽 이슬 맞으며 움직인 곤한 몸은

그제서야 잠시 쉴 수 있었다

처마 밑 그림자가 이삼십 센치는 길어져야 다시 들일을 나갈 수 있었다



간간이 손을 휘두르며 질긴 똥파리를 쫒고는 엷은 코를 골며  다시 낮잠으로 빠져들던 아버지

얇아진 흰 난닝구 밖으로 드러난 깡마른 팔의 핏줄은 눌러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킬 만큼 굵게 두드러져 있었다

그땐 대부분 그랬다

돌파구 없는 초라한 경제적 현실에서

가장의 생활력은 더 두드러졌고

힘에 부쳤다

아버지 또한 내색없이 분투하고 있었으리라



억대우 같은 노동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곳이 농촌이었지만

아버지는 전형적인 농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조상 대대로의 천수답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체질적으로 열정적이거나 왕성한 노동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그러나 존재감이 있으셨

자신을 스스로 앞줄에 세운 적 없었지만

결국 앞줄에 섰다

의사소통이 유연하셨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격식 있는 성품에

말쑥한 외모까지

작은 시골 마을에선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 인생 파고 피할 수 있으랴

손으로 코끝 비비며 눈물 삼킬 일도 있었겠지만

낙담한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해 내기는 어렵다  



아이들 앞에서 돈얘기는 절대 금물이었다

곤궁한 농촌의 목줄을 쥐고 있던 돈

그 돈이란 것은 힘들이지 않고 입을 타고 나와 버리지만

아버지의 헛기침과 엄마의 눈치에 의해

버젓하지 못한 현실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을 부모됨의 도리나 사명처럼 여기신 덕에 상대적 빈곤감이나 박탈감이 크게 자리잡지는 못했다

울퉁불퉁한 현실의 바닥을 제대로 디뎌보지 못한 철부지는

그래서 세상이 그렇게 밝았는지 모른다



그 시절 아버지의 언어란 무겁고 일방적이었다. 시선 둘 곳을 찾거나 교감을 회피하는 경직된 상황을 초래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말수는 적었으나 건조하지 않았다

지혜로웠고 오리털 가득한 온도였다

당신과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오냐'라는 두 음절이었다

깍쟁이는 아버지가 또렷하게 앉아 있을 때보다는

눈을 감고 누워 있을 때 말을 붙였다

자질구레하고 다소 엉뚱한 철부지의 요구였지만 망설임 없이 진심을 담아

오냐라 하셨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노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파릇파릇 가슴에 오냐라는 말만큼 전적인 공감을 느끼게 하는 말은 없었다

기대하던 그 말을 어김없이 들을 때면

마냥 희망차고 행복했다

오냐라는 말이 실천되기도 어렵고

실천되지도 않은 채 흘러가버릴지언정

이골이 나기는커녕 오냐로 새롭게 들어앉은 희망의 상상력은

적잖은 불만과 욕구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부모됨의 유교적 틀이 몸에 배어 있던 시대였으나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부드럽고 합리적인 사고는

자신과 세상을 향한 태도에 주눅들지 않게 해 주었다

그 따뜻함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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