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haemyungdan
Aug 26. 2023
푸른 나무에 나는 가끔 작은 새로 날아간다(3)
시간을 만나다
고향은 엄마의 것이어서 애처롭고 행복하다
온전한 것은 자식에게 주려고 스스로
짜투리가 되셨던 엄마라는 이름의 사랑
험난한 가시밭길 받쳐내며 애면글면 세월의 고비 막아준 엄마라는 이름의 세포
훼손되고 해체되고 소실되더라도 마지막 의식까지 남게 될 엄마라는 이름의 온도
도무지 닿을 수 없어 안게 되는 부채는
평생 시린 통증을 준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엄마, 엄마, 엄마...
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소리
도망칠 수 없는 자식의 신음 소리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세상이 해소되었고
궁극적인 평화를 체험했다
엄마는 스스로의 성정이 굳셌고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평생을 강했다
물색 없는 행동을 하지 않으셨고 현실을 직시해 과장됨이 없었다
묵묵했지만 솔직했던 엄마는 빨간 동백꽃과 짙은 녹색잎의 대비만큼 인생 신념이 뚜렷하셨다
향기를 뿜지는 않았지만 은은하셨고
봄바람처럼 살랑이진 않았으나
생활의 온도는 봄바람 같은 분이셨다
자식에 대한 사랑 표현이 넘치셨고
비유와 묘사가 어찌나 섬세한지
세상과 삶이 선명하게 채색돼 온전한 생명력을 얻었다
때론 그것이 우스개로 연결될 땐
'엄마, 또! 또!'를 외치며 함께 배꼽을 부여잡기도 했다
생동감 있는 표현과 분출된 흥이 엄마의 내재된 재능이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부드러움의 여유보다 밖으로의 굳셈이 더 요구되던 시절
엄마는 침체된 형편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매운 인생 마다않고 전진하셨다
그 시절 발버둥치지 읺은 부모가 몇이나 있으랴
하얗게 소금이 낄 정도의 생활 전략이 필요했지만
엄마의 부지런한 솜씨와 감각은
내게 특별한 부유함을 안겨주었다
리폼한 원피스는 새것 같았고
오일장에서 산 레이스 달린 카바양말
하얗고 넓은 칼라의 산뜻한 단풍무늬 원피스는
시골 아이의 옷이 아닐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도시 아이 같다는 사람들의 칭찬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숨에 알아주는 말이기도 했다
사각거리던 엄마의 월남치마
갈라진 발뒤꿈치를 마찰하던
나일론 양말의 정전기 소리는
새벽잠을 어렴풋이 깨우곤 했다
그때 엄마의 옷에선
어둡고 차가운 겨울바람 냄새가 났다
따뜻한 이불 속으로
몸을 말아 넣으며 했던 생각은
엄마가 아니라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것이었다
흰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아궁이 앞에 앉아 있는 엄마의 볼은 늘 발갛게 달아 있었다
불의 공간 부엌은 모성과 맏며느리라는 책임을 볼모로 자신의 기능을 극대화했다
설거지와 세수에 쓰일 물을 데우고 나면
광창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가마솥 솥뚜껑 소리 도마질 소리
그것은 행복의 장단이었고 영혼의 멜로디였다
하루도 거르는 법 없던 헌신과 사랑의 부엌은 인생 미식을 쌓아 주었고
콩가루김칫국, 양대죽, 술빵, 호박범벅
마구설기, 무시루떡, 무청절임 등은
시간을 다독이고 어루만져 준
엄마의 레시피였다
땔나무의 구수한 향기와 함께
영원히 식지 않고 굳지 않을 소울푸드는
추억의 블랙홀이 되어
쓰고 떫은 일상을 잠시 탈출시킨다
세월이 불러낸 그 음식들에 둘러싸이면
재티가 앉아 있던 엄마의 머릿수건 냄새만큼이나 평화롭고 아늑한 쉼터가 된다
한없이 품을 빌리고 기대기만 했던
서툴고 무딘 자식의 초상은 초라하지만
오늘도 구순 노모는
나보다 먼저 안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