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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Sep 24. 2023

글을 쓸수 있는 곳, 글을 쓸 수 없는 곳

나는 단골이 될 수 없었다





집중이 잘 되는 곳이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우리는 생각읕 기울일 나만의 공간을 찾게 된다

거실일 수도 서재일 수도 공원 벤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공간은 공간(空間)이라는 한자의 의미처럼 텅 비어 있을수록 좋다

덜어낼 것 없는 어느 사이의 안정감과 차분함과 느긋함이 있을수록 좋다

집안일, 잔여 업무 그리고 다양한 관계에서 빚어지는 잡다한 생각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면 좋다

몰입에 방해가 되는 시답잖은 용무와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곳, 민감하게 반응할 자극이 없는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동하게 된다

그 곳이 나는 카페다

내가 선택한 그 곳이라면 정신적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기도 하니 휴식과 글쓰기의 장소라면 내 공간은 카페다




어둡지 않으면서 편안한 주백색 조명이면 좋다

손님 쫒아내기에 딱 좋은 낮은 테이블이나 등받이 불편한 의자는 꺼려진다

1,2인용 테이블이 많은 곳을 반긴다

다양한 손님들을 반영한 것이니 지레 눈치볼 일이 적다

공간의 공유가 셀프적이라면 내게 어울린다

스스로의 실천이 요구되는 대신 자신의 자유를 챙길 수 있다. 배려가 담보된 자유로운 분위기라면 각자의 의지는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

오너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는 그것이 어렵다

커피에 어울리는 맛있는 빵이 있다면 여기에 더 더할 건 없다

약간의 쓴맛과 단맛이 올려놓은 행복지수가 이제 다른 감각을 연쇄적으로 깨워 줄 차례다

여기가 바로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남편이 출장을 가 신경쓸 일 없는 집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루틴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집에 있다간

또 집안일에 발목잡히기 십상이다

전철로 이동해 가야 하는 곳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이지만 오늘은 시나몬라떼가 맛있는 동네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브랜드의 앞치마를 두른 알맞게 단정한 젊은이 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텅빈 공간이 되길 바라며 창가쪽 의자에 앉았다




쟁반을 차분히 내려놓으며 맛있게 들라는 젊은이의 어조가 흔한 인사였지만 왠지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별 것 아닌 것에도 마음이 휘날릴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글 한줄 더 나올 것 같은 실속 없는 이유가 생겼다

그때 둘째의 카톡이 휴대폰 상단에 떴다 사라졌다

"지금 밖이세요?"

주말 10시 30분 정도라면 아침 설거지할 시간이다. 둘째는 따로 살고 있어 우리의 상황을 일일이 모른다

이른 시간 혼자 카페에 앉아 있다는 것이 주부답지 않은, 엄마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할까봐 나답지 않게 대뜸 거짓말을 했다

"아니~, 집이지! "

"....."

"왜? 무슨 일 있니?"

"정민이가 엄마랑 똑같은 사람이 카페에 있다고 그래서요.."

헉! 세상에 비밀은 없구나!

웃음이 나왔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즐겨 보자고

익명의 이기심으로 진실의 숨바꼭질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난 바로 이실직고를 했다




그 후부터가 문제였다

둘째와 정민이는 실시간 톡을 했다

둘째가 정민이의 뜻을 나에게 전달하느라 나까지 꼈으니 셋이서 실시간 톡을 한 셈이다

엄마가 무슨 케이크를 좋아하시냐 정민이가 묻는다며 둘째가 나에게 톡을 했다

나는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고 둘째는 그걸 다시 정민이에게 전달했다

정민이가 뭐라도 드리고 싶다 한다고 했다

맛있는 커피면 충분하니 정말 괜찮다고 했다

조금 불안해 하는 정민이에게 둘째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했다

엄마가 워낙 확실하게 말하는 스타일이시니 더 이상 신경쓰지 말라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정민이를 몰라볼 수 있다

그러나 둘째 친구 정민이, 큰애를 친형처럼 따르고 조언을 구하는 정민이를 모를 리 없다

같은 동네지만 정민이 집에 가 본 적도 없고, 정확히 집이 어딘지도 둘째는 모르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얘기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정도일 뿐인 그 아이를 모를 리 없다

큰애와 상담 후 공군에 입대하고 복무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입을 통해 더욱 가까워진 아이다

정민이를 더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휴가를 나왔을 때다

휴가는 군인에게 짧은 해방구다

엄격한 규율과 명령과 통제에서 벗어난 또래 아이들처럼 떠들썩하게 모여 식사하고 노래방이나 게임방에라도 감직한데 정민이는 둘째를 불러내 가까운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다

제대를 하고는 우리집과 작은 아이가 있는 아파트에 모여 식사도 하고 큰애 작은애랑 어울렸지만 일을 하는 나와 겹친 시간은 잠깐 뿐이었다





잠깐을 봤어도 정민이는 꽤 괜찮은 아이다

철이 일찍 든 건지는 몰라도 자율성이 높고 관계와 소통에 능하다

둘째가 좋은 친구를 뒀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드러내놓지 않는 어떤 상황이 때론 위태로운 것이 아닌가 염려될 때도 있다

그러나 정민이는 그 누구도 아닌 정민이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라면 어린 나이에 낮은 자존감이나 자신에 대한 방임

그리고 공격성 같은 마음의 병 하나쯤 있을 수도 있으나 정민이는 도망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현실을 돌파해 나가고 있다

대학 학생회장도 맡고 있고 시간을 쪼개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소화해 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카페 아르바이트였던 것이다




부모라는 환경과 가난은 실패가 아니다

스스로 계획하거나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성공과 실패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이제부터는 자신의 선택과 실천이 성공과 실패로 갈릴 수 있다

뒤엉켜 있는 결핍과 욕구를 직시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고, 그것을 취사선택해 가치 있는 삶의 불쏘시개로 사용한다면 정말 멋진 성장이 있을 것이다

문제 없는 인생이란 없지 않은가

청춘의 열정이 지혜와 자유를 얻어 걸맞은 인생의 온도를 누리기 바란다

질리지도 불안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을 현실을




정민이와 둘째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한참을 카톡대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많은 커피를 길지 않은 시간에 비운 나는 그 카페를 나왔다

누가 아는가

자신의 한계를 믿지 않는 정민이가

미적 감각이 뛰어난 정민이가 카페 사장님이 될지

그때는 챙겨주는 케잌 마다않고 먹어보겠다 할 것이다

편한 마음으로 그 사장님의 그 공간의 단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골이 될 수 없다

그 곳에서 글을 쓸 수 없다

아르바이트생 정민이를 앞에 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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