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haemyungdan
Oct 22. 2023
그 바다엔 풀과 나무들이 바람을 등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쉬지 않고 바닷바람을 버틴 그것들의 모습은 기형적이었다 필사적으로 언덕을 기어오르려는 듯한.
가랑비 같은 소금기를 몸으로 맞으며 하늘을 향해 솟지 못한 채 납작하게 절여져 있는 듯했다
바람골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추고 웅크린 채 스스로를 감싸안고 있었다
짓궂은 운명이 가혹해도
몫지어진 운명이 허무하더라도
심장을 멈추게 할 순 없다
생의 욕구를 버릴 수 없다
생명은 그리 강하지 않으나 해방과 자유의 의지는 무엇보다 강하다
45도 틀린 몸에선 뜨거운 불덩어리가 보였다
바다를 바라보려 태어났으나 바다를 바라볼 수 없는
자유로운 생명력에서 멀어진
고통과의 드잡이 싸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바람에 수없이 흔들렸을 혼돈과 불안이 숨어 있었다
오래된 분노도 숨어 있었다
분노와 불안과 고뇌가 생명의 흔적이리라
그러나 그 불덩이는 자신을 태울 뿐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버려야 했다
증오는 참지 말고 바다에 풀어버려라
잦아든 분노와 불안과 두려움이 지금의 모습이리라
바람의 울음은 나무의 울음보다 언제나 거대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아득한 울음
몇 번인지 헤아릴 수조차 없는 울음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그 울음
무구한 초월의 힘은
나무에 다다라서야 표현됐다
소멸에 크게 휘파람을 불며..
상실이 세상을 다르게 보게 했다
이해가 세상을 다시 찾게 했다
나무는 이 세계를 다시 열고 싶었다
깊은 영혼을 불러 보았다
나를 향해 바친 시간
나를 사랑해야 할 냉혹한 현실
어떤 고통은 겪어야만 극복할 수 있다
처절한 경험이 가장 큰 설득력이다
생명은 순간 순간 다시 순수해졌다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일엔 뭐가 또 있을지
그 곳에서의 가능성을 묻고 또 물었다
생명을 가로지르는 본성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창조이리라
나무는 이 바다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생명의 존엄을 나무는 구원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자신의 스승은 고독한 자신
나무는 스스로에게 기댔다
이제 바람과의 대치는 없다
조금씩 자신을 바꾸며 존엄을 지켰다
멈춰 있는 시간은 없었다
끊임없이 선택하고 선택했다
바다의 시야가 사라진 나무는
난연한 하늘과 앞산을 온전히 느끼며 신선한 마음이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리듬에 가슴을 맡긴 채
오히려 바다에 집중하고 있다
거친 파도는 언제 숨이 고른지
낚시꾼의 발걸음은 갯바위에 언제 오고 가는지 귀를 세운다
인기척이 비는 고요한 밤바다
솟구쳐오르는 물고기들의 물꽃놀이
달빛의 은은한 박수 소리
새털처럼 가볍고도 웅장한 그들의 합창을
나무는 어깨너머로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그들은 혼자였다
그러나 하나였다
울타리는 없었다
모든 것은 자연의 길이었다
그 나무에게 안부를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나무는 더 이상 위태로워 보이지 않았다
서툰 몸짓도 없었다
마냥 저 높은 곳을 향한 자세였다
드높은 생명
바다는 여전히 나무의 정원이다
바람의 언덕은 바다의 정원이다
그런 바다와 언덕은 잠시 나의 정원이다
갈대와 나무와 바다와 나는
스스로의 본성에 대답하고 있었다
자유의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