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이 아니라 지켜낸 것
11월에 전국에 기록적인 폭설이 왔다. 하필 이 기록적 폭설 때문에 남편과 계획해둔 2박 3일 여행을 여행을 취소했다. 아쉬운 마음에 집 근처에 숙소를 잡고 1박 2일로 무계획 여행을 떠났다. 그날 저녁 숙소 근처 돼지고기 집에서 남편과 술을 먹으며 이런 저련 얘기를 했다.
"지난 2년은 나에게 정말 지옥같았어. 투자했던 게 손실로 돌아와 지옥같았다기보단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어. 같이 투자를 시작했지만 누구는 잘되었고 나는 그러지 못했잖아. 거기서 오는 자괴감이 너무 컸어. 그래서 나는 정말 이 지옥을 끝내기 위해 내년엔 지금보다 더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보려고해. 그게 사업이든 뭐든 투자든."
그런 나에게 남편이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너가 하는 건 절대 안말릴거야. 너가 그 때 했던 투자가 결과적으로 지금 너를 힘들게하지만 그게 우리의 관계까지 망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그 때 너가 투자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널 믿었고 너가 나의 반대 없이 투자하면서 우리 관계가 망쳐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 기억을 갖고 과거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행동할거야. 널 말리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같이 한 투자였어. 투자의 과정 자체는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넌 정말 많은걸 배웠잖아. 자신만 믿고 따라오라는 강사를 믿지 않게되었고, 스스로 나아가야하는 중요성을 배웠고. 그 때 너의 추진력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러지 못하고있는 것 같아 아쉬워."
남편이 ‘부부 관계’를 제1 원칙으로 세워놨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원칙을 세우는 사람. 그게 나의 남편이다.
내가 부동산 투자를 공부한다며 여러 강의를 수강하고 있을 때, 남편은 집에서 혼자 진득하게 찰리 멍거, 벤자민 그레이엄 등 대가들의 책을 읽으며 스스로 공부했다.
내가 남편에게 강의를 들어보라 권유할 때에도 (더 빨리 그리고 많이 투자해서 빨리 부자가 되자라는 생각으로 권유했었다.) 그는 모두 거절하고 꿋꿋이 혼자 공부했다.
그는 대가들이 말한 투자 방식을 완전하게 학습한 뒤 투자 원칙을 세웠고 그 누가 와서 원칙을 바꾸라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고수하고 또 고수했다. 비트코인이 오르던 말던 관심도 없었다. 천천히 가고있는 것 같아도 성과가 늘 좋았다. 그리고 이제는 부동산 투자의 손실을 남편의 투자 수익으로 메꾸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람에게 투자가 아닌 삶에서의 제1 원칙은 ‘부부 관계’였다. ‘다시 돌아가도 나를 말리지 않을 것’이란 말에 난 내가 너무 부끄러워졌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지켜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