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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멸종되는 사회

책 리뷰-경험의 멸종

by Lablife

빨간 '안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이름, 이동진 평론가가 얼마 전 유튜브에서 추천해 준 책을 읽었다.

책의 이름은, [경험의 멸종] 사실 그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은 건 아니다.


썸네일 만으로 읽어볼까? 호기심이 일었고 바로 구매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어느 정도 영화 평론에서 전문가이니 좋은 책에 대해 잘 리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영상을 보면 이미 책을 읽은 느낌이 들까 봐, 흥미가 떨어질까 봐 영상을 보지 않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을 보고 느낀 것과, 이해한 바를 하나씩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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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밈으로 유명해진 콜드플레이 공연, 한국 내한 때 나도 남편과 방문했었다.

공연 막바지에 그가 "핸드폰을 모두 집어넣고 지금 이 노래에 집중해 달라"이렇게 얘기했다.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서로를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별빛 같이 빛나던 핸드폰 화면들이 꺼지며 모두가 온전히 노래에 집중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되지 않는 공연이라니.. 장면이 정말이지 이질적이었다.


기억하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촬영하지 않고 온전히 즐기는 경험은 흔치 않다.

나는 걸으면서도 핸드폰을 보고,

밥을 먹으면서도 유튜브를 틀어놓는다.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으면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는다.

이런 이렇게 모든 일을 생산성 있게 하려고 하고 기록하려고 하는 이러한 행태..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 책에서는 그 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스마트폰은 경험을 실종시켰나.

이제 작은 스마트폰 속에서 우리는 전 세계로 여행을 간 사람들의 영상을 보게 된다. 마치 여행을 가지 않아도 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그 여행지가 좋아 보이면 다음 여행지로 그곳을 선택해서 여행을 가기도 한다.


문제는 그 반대의 경험이다. 가끔 힘든 경험을 하고, 맛집에 실패하는 영상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 유튜버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대신 고생 했으니 여러분은 하지 마세요. 여긴 정말 아니네요."

그렇게 우리는 그 경험을 포기한다.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여러 사람의 경험을 통해 듣고 선별하여 취한다. 정보의 순기능이자 역기능이다.


간접 경험을 실제 경험한 것처럼 느끼며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일 것이라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요즘 나는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별점으로 만들어진 정량화된 수치만을 본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긍정적 리뷰가 없는 상품은 '믿고 거르는'것이 된 것이다. 무플이 악플보다 더 무서운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리뷰가 많고 평점이 좋은 전문가를 찾게 된다. 그 사람이 실제 그 분야의 전문가인지는 중요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전문가를 경험했고 그 경험이 좋았는지에 대한 수치가 더 중요하다.


어떤 책에선 직접 경험한 걸 가르칠 수 있을 때 그걸 "앎"이라고 정의했다. 그럼 우리가 우리가 인터넷으로 보는 건 100% 가상의 것이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방대한 지식을 노션에 저장해 두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실제로 그걸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서 계속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고 또 저장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한 사업가 분께 메일을 드린 적이 있다. 직접 만나 여쭤봐도 되겠느냐는 나의 질문에 정중하게 거절하는 메일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 메일의 내용을 일부 가져왔다.

저도 처음엔 유튜브, 책, 커뮤니티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건, ‘성공한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보다 ‘나한테 맞는 기준’을 만들어야 결국 오래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좋은 정보여도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없으면 넘깁니다.
나한테 맞는 타이밍이 언제인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그리고, 잘 안 풀려도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성공했다고 무작정 따라가진 않아요.


결국 나에게 맞는 걸 찾아는 과정은 그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남들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뿔처럼 나아가라는 것. 그러니 전문가를 만나 그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지 말고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시간에 집착하는 사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대해 굉장한 불안함을 느낀다고 얘기한다.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더 강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웃긴 일화를 하나 얘기해 준다. 수하물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7분여 정도 걸리는 공항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너무 폭주하자 수하물을 받는 곳을 걸어서 6분 거리에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가자마자 1분 만에 수하물을 픽업할 수 있게 세팅해 놓았다. 그러자 불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불만이 줄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7분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6분이라도 걷는 것, 즉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집착은 결정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실행하고 경험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결정’을 미루는 이유는 돈이든, 시간이든, 감정이든, 조금도 돌아가지 않고 다각도로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커서일 것이다. 특히 ‘시간’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은 우리가 해야 할 일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단 어떻게든 시간을 줄이기 위해 쉴 틈 없이 새로운 정보를 찾아 헤매게 만든다.


이미 해봤다는 남들의 이야기, 더 서둘러 빨리 갈 수 있는 길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을 찾아 헤맨다. 그 시간조차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고 한 편의 시가 떠올랐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중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처럼 스스로 결정하고 경험하기 어려운 시대가 또 있을까? 생각해 보면 오늘이 제일 쉬운 날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심화되고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경험한 것으로 착각하지 않을 수 있게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보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그것을 체득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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