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

결과가 아닌 축적으로 생의 목적을 찾는 사람들

by Lablife

벽면을 가득 채운 LP와 예술 관련 서적들이 있는 카페에서 『런던/비엔나/파리에서 만난 예술가의 거리』라는 책을발견했다. 파리를 제외하고 가본 적 없는 도시들이지만, 문득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각 도시에서 탄생한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운건 예술가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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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폐렴은 불치병이었다. 내가 앓았던 맹장염도 한국전쟁 이후에서야 한국에서 수술이 가능해졌다. 반세기만 늦게 태어났어도 나는 31세에 생을 마쳤을지 모른다.


책에 나오는 예술가들 역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 모차르트, 존 키츠. 그들은 죽었지만 이름은 남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창작했다는 사실.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마치 예술의 혼이 그들을 이끌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놀라울 만큼 비합리적일 정도로 규칙적인 일상.


무라카미 하루키: 새벽 4시 기상 → 6시간 집필 → 오후엔 달리기

피카소: 하루 10시간 이상 그림

베토벤: 매일 아침, 정확히 60알의 커피콩으로 커피를 내려 마심

칸딘스키: 같은 시간, 같은 조명, 같은 위치에서 작업


이들의 일상은 단조롭고 반복적이었다. 창의성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비합리적으로까지 보이는 반복과 규칙성 덕분에, 이들은 매일 창작했고, 그 결과물이 축적되었다. ‘축적’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하루 한 문장, 한 장, 한 소절씩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예술가들은 위대한 영감을 기다리기보다, 루틴을 통해 창작을 일상화했다.


예술가는 성취보다 ‘축적’으로 존재한다.

일반적인 성취는 결과 중심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창작자에게는 ‘쌓이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된다.

창작을 멈추면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고, 계속 만들면 존재가 확장된다.

결국 예술가의 영속성은 시간을 이기려는 욕망이 아니라,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감각을 붙잡으려는 본능이다.


20대 후반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한 베토벤 역시

자신이 청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서를 쓸 만큼 괴로워했다.

그러나 "예술이 없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끝내 음악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대표곡 대부분은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았던 시기에 탄생했다.

창작 덕분에 삶의 의미를 찾아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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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삶을 예술가처럼 살아가야겠다고.

매일 지루한 루틴을 반복하면서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오늘 하루 쌓아나가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

그 자체에 감사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삶을 산다면 이미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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