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선 땅으로 떠난 이유
영어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콤플렉스였다. 학창 시절부터 영어점수는 바닥이었고 커서는 더더욱 영어를 멀리했다. 덕분에 간단한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며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낼 줄은 전혀 몰랐다. 살면서 영어를 최대한 피했다. 나는 영어를 못하니까. 내가 못하는 일을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토익점수 따위는 필요 없는 직업군을 골랐다. 글로벌 시대? 됐다고 하라! 번역기가 이렇게 잘 나오고 나는 한국을 떠날 일이 없는데 뭐 어떠랴! 그런 생각으로 이십 대 대부분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변덕이 들었던 걸까. 갑자기 유튜브에 뜬 워홀 영상을 봐서, 성인이 된 이후 독학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된 사람들의 영상을 봐서, 매년 재계약 여부에 마음을 졸여야 되는 불안정한 고용형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양한 계기가 한 가지를 가리켰다.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
우선 워킹 홀리데이란, 비자의 한 종류로 해당 국가에서 체류하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비자를 말한다. 다시 말해 해외에 살며 일을 하며 휴가를 즐기는 것이다. 일은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식당 서빙, 주방일, 청소일, 농장일 같은 대표적인 워홀잡부터 자신의 전공을 살려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아는 친구는 본국에서 대사관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호주에서도 대사관에서 일을 한다. 워홀비자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워홀을 갈 수 있는 나라는 여러 나라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아일랜드 같은 영어권 국가들이 선호된다.
솔직히 나에게 워킹 홀리데이란 노쉬발 킵고잉으로 기억되었다.
워홀=농장일=개고생=왜 가?
나는 영어도 못하고 가면 농장일 밖에 못 할 텐데 고생만 하는 거잖아? 뭐 하러 가? 주변에 워홀을 간다는 사람이 간혹 있었지만 나는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십 대 초중반을 보냈다.
워홀은 내 인생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나는 영어가 무서워서 혼자서는 해외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었다. 직장생활 4년을 하면서 한 번도 해외여행에 돈을 쓴 적이 없다는 뜻이다. 인생을 통틀어 해외여행 경험이라곤 몇 해 전 가족여행으로 간 일본여행이 다였다.(이때는 동생이 일본어를 잘해 모든 의사소통을 담당했다.)
대학생 때도 교환학생, 해외연수 등의 기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영어를 못하니까! 잘하고 싶다는 의지도 없었으니까! 나는 영어가 너무 싫었다. 내 못난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유튜브를 보다 보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독학으로 영어를 잘하게 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3개월 만에 유창해진 사람부터 몇 년에 걸쳐 잘하게 된 사람까지 그 방법도 유형도 다양했다. 한동안 알고리즘에 떠 그런 영상을 많이 보게 되었다.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물론 누군가 서울대에 합격한다고 해서 나도 합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건 서울대에 합격하거나 고시에 합격하는 일과는 종류가 다르다. 시험 성적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영어라면 기간도 정량도 정해져 있지 않다.
성인이 된 이후, 그것도 국내에서만 공부해서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지만 분명히 도전했고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도 되는 거 아닐까? 지금부터 꾸준히 하면 1년 후, 5년 후,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잘하게 되지 않을까?
시작은 가능성이었다. 나의 강한 콤플랙스 아래 있던 잘하고 싶다는 욕망을 보았다.
그다음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 건 영어를 잘하는 친구 J의 영향이었다. J는 해외 유학 경험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외화를 많이 본 영향으로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J의 영어실력을 처음 보게 된 건 20대 초반에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다.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가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며 외국인과 같은 방을 썼다. 이때 J가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영어로 소통하는 걸 처음 봤는데 너무 멋있었다.(당연히 난 반도 못 알아듣고 J가 이미 한 질문을 또 하기도 했다.) 아마 J는 이때를 떠올리면 나 그때 영어 진짜 못했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J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고 계속 실력을 키웠다.
대학도 어학 관련된 과로 가고, 취업도 해외를 담당하는 부서를 위주로 취업해, 취업 이후에도 영어 실력을 키웠고,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로 이직도 성공했다. J가 영어로 회의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봐도 멋있었다. J의 영향으로 나도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내가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니 이런저런 공부법이나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려 J에게 감사를 표한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자연스레 워홀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워홀은 만 31세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이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어? 나 아직 갈 수 있네?'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한국 나이로 29살.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나이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나이였다. 그런데 아직 워홀을 갈 수 있는 나이라는 걸 확인하니 내가 그렇게까지 나이를 먹지 않았구나, 아직 도전할 수 있는 나이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곧장 마음을 먹었다. 가자. 하지만 무턱대고 갈 순 없으니 1년 동안 준비해서 가자. 그렇게 생초보의 영어 분투기가 시작되었다.
유튜브 강의, 쉐도잉, 영어 팟캐스트, 전화 영어 등 할 수 있는 공부법은 다 해봤다. 영어 공부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그래도 영어공부를 하며 느낀 점은 영어공부에 왕도는 없다. 하는 만큼 는다는 점이다. 조금 더 효율적이거나 조금 덜 효율적인 공부법은 있을지 몰라도 획기적인 지름길 같은 건 없다. 하나 있다면 압도적인 공부시간.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고3 때도 못한 일이니 퇴근 후 1-2시간 공부에 만족해야 했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공부법들만 꾸준히 해도 영어는 조금씩 는다.
공부를 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신기했던 점은 마음을 먹으니 괴롭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 전 전화 영어를 하고, 퇴근 후, 혹은 쉬는 날 책상에 앉아 영어 강의를 듣고 안 풀리는 혀로 떠듬떠듬 쉐도잉을 하는 게 괴롭거나 힘들지 않았다. 점점 실력이 늘수록 재밌기까지 했다.
방을 같이 쓰는 동생이 "언니 진짜 대단하다" 말하곤 했지만 나는 지금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영어 공부를 하는 게 더 중요했고 마음을 먹으니 실천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강력한 동기. 그게 모든 것을 이겼다.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는 거북이의 가사가 실로 공감이 갔다.
한번 먹은 마음은 끝없이 부풀어 올랐다. 올해까지만 하고 퇴사할 거라고 마음을 먹으니 회사 생활도 그리 괴롭지 않았다. 1년 동안 어딘가 붕 뜬 기분으로 살았다.
하지만 마냥 행복한 미래만 꿈꾼 건 아니었다. 워홀을 떠났다가 초기정착에 실패하고 돌아오거나 계속 한인잡만 하다 돈도 영어도 외국인 친구도 못 사귀고 돌아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많았다.
워홀은 나에게 큰 회피이자 도전이었다. 평생 계약직, 프리랜서로 산 떠돌이 직장생활로부터의 회피이고, 갑작스레 같이 살게 된 할머니로 인해 답답해진 집안 분위기로부터의 회피였지만, 낯선 땅으로 가는 도전이고, 평생의 콤플렉스에 대한 도전이었다.
회사 계약 기간이 한 달 남았을 무렵. 부장님이 재계약 관련 얘기를 꺼냈을 때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유까지 얘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유를 집요하게 묻는 부장님에 솔직하게 말했다. 워홀을 갈 거라고. 비웃거나 말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부장님은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냐며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지금 안 가면 후회할 것 같구나? 계속 마음에 남았나 보네.' 내 의사를 존중해 준 김 부장님께 감사를 표한다.
이후 소문이 퍼져 거의 전 부서 사람들이 내 소식을 들었는데 다들 축하해 주며 비슷한 시기 퇴사하게 된 사람들과 축하파티까지 받으며 웃으며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아, 단 한 사람, 내 일을 다 떠맡게 된 내 직속후임만 크게 슬퍼했는데, 점심을 먹으며 처음 퇴사 얘기를 했을 때 그 충격받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영어공부 겸 워홀을 간다고 하니 이태원 가서 하면 가면 안 되냐는 말에 깔깔 웃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모른다.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성공도 실패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경험은 쌓이고 헛된 경험은 없다. 설령 한 달 만에 돌아오게 될지라도 그렇게 생각하자 다짐하며 낯선 땅으로 떠났다.
2024년 3월 9일
그렇게 낯선 땅이 똑 떨어졌다.
새로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