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feat. 러닝)
그렇게 호주에 왔다. 나는 첫 번째로 정착할 도시로 시드니를 골랐다. 큰 이유는 없었다. 나는 3월에 출국했고, 호주는 계절이 반대라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가을쯤이었고, 호주의 양대 도시 시드니와 멜버른 중 겨울 멜버른에 대한 악명을 들어왔던 터라 별생각 없이 시드니로 향했다. 더불어 가장 큰 도시이니 일자리도 가장 많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렇게 꿈꾸던 워홀 생활은 처음부터 행복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처음 도착 후 일주일 만에 집을 구했다.(집은 보통 Faltmates라는 어플을 통해서 많이 구한다.)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첫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나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바리스타로 일하고 싶어서 한국에서 학원에서 라테아트 수업을 듣고 카페에서 알바도 두 달 동안 했었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바리스타를 전문직처럼 여기고 호주에서의 경력이 없으면 바리스타 잡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엔 올라운더라고 해서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일로 많이들 시작한다. 바리스타든 올라운더든 좋으니 카페에서 일하는 게 목표였는데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호주에서 일을 구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1. 레주메 드랍하기
가게에 냅다 들어가서 안녕? 너네 지금 사람 구하니? 나 지금 일 구하고 있어. 여기 내 레주메야. 생각 있으면 보고 연락 줘^^ 하고 레주메를 돌리는 걸 말한다. 202n년에도 이런 아날로그가 통한다는 게 놀랍다. 시티에서 일을 구하려면 레주메 드랍을 해야 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하려니 정말 발이 안 떨어지고 입이 안 떨어졌다. 나는 mbti에서 I가 92% 나오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레주메를 몇십 개를 돌린 것 같다. 처음엔 정말 부끄럽고 영어도 너무 더듬거려 창피했는데 몇 번 해보니 기계적으로 말이 나왔다. Hi! How are you? I'm good! Actually I'm looking for a job at the moment. Can I talk to someone in charge? Or could you plz pass my resume? Thank you so much! Have a good day!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2. 인터넷으로 지원하기
우리나라로 치면 사람인, 잡코리아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공고 지원하기는 방법이다. 사실 레주메 드랍보다 이쪽이 더 연락이 많이 오기 때문에 정말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이쪽을 노리자. 대표적인 구직사이트는 seek, gumtree, jora local 등이 있다.
3. 한인잡 구하기
처음부터 한인 잡을 구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주메 드랍하기도 지치고 구직사이트를 통해 몇 번 연락은 왔지만 번번이 트라이얼 이후 연락이 안 온다면 슬슬 한인잡에 눈을 돌리게 된다. 지역마다 대표되는 한인사이트들이 있는데 시드니는 호주나라가 대표적이다. 구직한 지 2주가 넘어가는 시점에선 호주나라 구인구직 공고를 하루 종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나도 번화가나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카페 위주로 레주메 드랍을 했다. 하지만 트라이얼 2번에 현실을 깨닫고 식당 서빙이든 한인잡이든 가리지 않고 어디든 지원을 했다. (*트라이얼이란 고용을 하기 전 1-2시간 정도 일을 해보는 것을 말한다. 호주에선 정식 고용 전 트라이얼 과정을 거치는 게 보통이다.)
트라이얼을 갔다 긴장해서 유독 영어가 안 나와 제대로 입도 뻥긋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자괴감이 철철 흘러넘친다. 나는 여기 왜 왔고 도대체 뭘 하고 있으며 회사까지 그만두고 와서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하고 한심해진다. 2-3주가 넘어가면 자괴감과 초라함에 빠져 사람이 급속도로 우울해진다.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초기에 돌아가는 사람도 제법 된다.
당시 나는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일자리에 합격시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면접이나 트라이얼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합격을 주는 건 내 몫이 아니다. 그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트라이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영어니 영어 공부를 했다. 카페나 식당에서 쓰는 영어표현도 찾아보고 매일 영어 강의를 보며 공부하고 넷플릭스를 보며 쉐도잉도 하고 나중에는 영어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또 방에만 있으면 우울해지니 러닝을 시작했다. 사실 호주에 오기 전부터 호주는 공원이 많으니 러닝을 꼭 해보자 마음을 먹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러닝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끝판왕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것도, 엄청난 순간 가속도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오로지 지구력으로 끊임없이 달려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모름지기 호모 사피엔스는 하루에 9-15km는 달려야 된다는데 그렇게 치면 1분도 겨우 뛰는 나는 인간실격이었다.
누군 지각을 면하려고 잠깐만 뛰어도 목에서 피맛이 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누군 21세기에도 42.195km를 달린다는 게 어찌 대단하지 않겠는가. 비록 나는 인간실격일지라도 정말 인간적으로 존경심이 든다.
러닝 하는 사람들이 뭐 호모 사피엔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달리는 건 아니지만, 무슨 이유에서건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을 하며 달리는 사람들을 어찌 동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지만 항상 이런저런 핑계로 시작조차 외면해왔다. 하지만 시간은 남아돌고, 날씨도 좋고, 집 근처에 달리기 좋은 공원까지 있으니 지금이 기회였다.
러닝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런데이'라는 어플의 도움을 받았다. '런데이'는 러닝에 도전하는 초보자들에게 좋은 어플인데 알아서 훈련 코스를 짜줘서 따라가기만 하면 점점 실력이 늘 수 있다. 나는 런데이로 30분 뛰기 코스를 도전했다. 런데이 30분 뛰기는 총 8주 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엔 1분 뛰고 30초 쉬기를 5번씩 반복하는 정도의 훈련인데 점점 시간을 늘려 나중에는 초보자도 30분을 뛰게 하는 마법 같은 훈련이다.
처음엔 2분씩 뛰는 것도 힘들었다. 런데이 훈련을 따라 뛰다 걷다를 반복하는 인터벌 훈련을 했는데 점점 한 번에 뛸 수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마침 집에서 10분 거리에 강가를 따라 러닝 하기 좋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강가를 따라 달리다 보면 모든 잡념은 떨쳐버리고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괴로워 죽을 것 같아도 1분 남았다는 안내음에 한 발만 더, 한 발만 더,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달리게 된다. 오늘치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이 나를 덮쳤다. 처음으로 5분씩, 10분씩 뛸 수 있게 됐을 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했다. 그럼 최소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그렇게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심신을 다스리며 호주에 온 지 한 달 정도 될 때쯤 운이 좋게 일식 레스토랑 서빙일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었으니. 이때의 기억으로 나는 지금도 시티잡 특히 서비스직을 기피하게 됐다. 서빙일은 한 번에 신경 써야 될 게 마흔예순네가지쯤 된다. 나는 안타깝게도 목소리가 작은 내향형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일에 신경을 못 쓰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안쪽에서 배달음식을 포장하면서 조용히 들어온 손님의 기척을 눈치채고 나가 큰 목소리로 인사해야 하며, 음식도 서빙해야 되고, 손님 계산도 해줘야 되고, 테이블도 치워야 되고, 영어 전화도 받아야 되고, 새로 온 손님 안내도 해주면서, 어떤 손님이 생강 더 달라고 한 요청도 기억하고, 몇십 개가 쌓여있는 배달음식도 나눠서 포장해야 되는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구별하지 못해 매번 지적을 받았다. 정말이지 매번 울고 싶었다.
일을 시작한 첫 주 금토일 각 10시간씩 3일 동안 30시간을 근무했다. 주방부터 야외테이블까지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며 잠깐도 앉아있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하니 하루에 2만보를 넘게 걸었다. 브레이크 타임도 따로 없어 식사도 4시쯤 손님이 가장 없는 시간에 허겁지겁 해치우듯 해결했다. 이 시간에 손님이 오면 교대로 밥을 먹었다. 그렇게 3일 10시간을 근무하니 발이 너무 퉁퉁 부어서 걷기도 힘든 지경이 됐다.
나는 평소에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따라 손님들이 시키는 콜라가 그렇게 청량하고 맛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칙! 하고 캔을 따는 소리부터, 잔에 부으면 똘똘똘 소리를 내며 기포가 싸악 올라오는 시청각적인 자극이 나를 괴롭혔다. 탄산 올라오는 검은 물이 대체 뭐라고. 시원한 콜라 한잔이 너무 간절했다. 현실은 물 마실 시간도 없어 목이 타는 갈증을 느끼며 침이나 꼴깍꼴깍 삼켰다.
살면서 그렇게 콜라를 마시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손님이 먹다 남긴 콜라를 버리며 그냥 마실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퇴근은 밤 10시. 모든 것이 일찍 닫는 호주에서는 무언갈 사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발이 부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굳이 콜라를 찾아다닐 기력도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놀랍게도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마트가 문을 열었다. 발이 아픈 것도 잊고 신나게 마트에 들어가 1.5L 패트 한 병을 샀다. 마트에서 집까지 걸어서 10분. 한적한 동네의 깜깜한 밤길을 콜라 한 병 소중히 품에 안고 절뚝대며 걸어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컵에 콸콸 따라 벌컥벌컥 마신 그 콜라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나는 시골로 지역이동을 할 결심을 한다.
내 워홀 인생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