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물가 대만족
나는 자취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집안일에도 무심했다. 엄마가 항상 차려주는 따듯한 밥,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는 옷, 집에 항상 구비되어 떨어질 걱정 없었던 생필품들 내겐 당연한 일상이었다.
내가 얼마나 불효녀인지 치앙마이에서 세탁기를 돌리며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핸드폰에 세탁기 모델명과 세탁기 돌리는 법을 검색하고 있는 불효녀. 평소에 집안일에 얼마나 신경을 안 썼으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하다니. 겨우 세탁기를 돌리고는 뿌듯해하며 거실 소파에 앉아 20바트(한화 약800원)를 주고 사온 망고를 먹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열대 과일과 함께하는 부지런한 아침, 멋지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수영(나는 맥주병이다. 나에게 수영은 물장구 정도)을 하고 올 생각에 기분 좋게 짐을 챙기던 중.. 5분 정도 지났을까? 베란다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먹고 있던 망고를 삼키기도 전에 헐레벌떡 베란다로 나간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어서 와! 베란다에서 수영할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우와 베란다에 워터파크 개장했다!" 오늘 수영은 베란다에서 하면 되는 건가..?
세탁기의 배수호스가 하수구랑 연결이 안 되어있어 베란다는 물바다가 돼버렸다. 급하게 세탁기의 콘센트를 뽑아 버리고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배수호스가 연결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은 세탁기의 배수 호스 연결을 잊었다며 내일 바로 배수 호스를 가지고 오겠다며 sorry를 무한으로 외치는 집주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베란다에서 30분가량 물을 퍼낸 후 뻐근한 몸을 이끌고 150바트 (한화 5600원) 로컬 마사지 가게로 향했다. 150바트라고 대충 할 거 같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손 맛 좋은 직원이 내 뼈를 분리했다가 다시 맞춰주는 기분이었지. 그만큼 시원하고 몸이 가벼워졌다. 30분 동안 물을 퍼내며 생겼던 몸의 피로는 150바트에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동남아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저렴한 물가가 아닐까 싶다. 물론 쓰기 나름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온몸이 쑤셔도 마사지는 큰맘 먹어야지 가능했는데, 여기에서는 작고 작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기분 좋은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작고 작은 마음이라 하면 40도에 육박하는 뜨거움을 이겨내고 마사지 가게로 최대한 땀을 억제하며 갈 수 있을까 하는 용기 정도랄까..?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보내던 어느 날 작고 작은 마음을 먹은 뒤 땀을 최대한 억제하고 갔지만 누워서 마사지를 받던 중 등땀이 차버린 느낌에 속으로 '망했다. 망했다.'를 외치고 있던 그 순간 직원분이 뒤로 돌아 엎드리라고 말했고 난 등땀으로 인한 민망함에 멋쩍게 웃으니 같이 웃으며 내 옷을 팔랑팔랑거리며 등땀을 말려주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 후 나의 그 작고 작은 마음먹기는 마사지를 받다가 등땀이 차도 민망해하지 말자라는 마음먹기로 변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을 먹으니 등땀이 안나더라? 저번 날의 등땀은 땀이 났다는 걸 인지한 순간의 식은땀이었을까?
세탁기 소동 그 후..
다음 날 오겠다던 직원은 깜깜한 밤이 되도록 오지 않았다.
또 하루가 지난 뒤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니 잊고 있었다며 또다시 sorry를 남발하며 지금 당장 직원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에헤이 이 사람 벌써부터 이렇게 건망증이 심해서야 허허
어쨌든 드디어 밀린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괜찮다!
작품명 : 스쳐간 코끼리
코끼리 바지의 인공 색소가 추출되어 나의 유일한 흰 티를 집어삼킴. 그 흰 티를 쿨하게 보내주지 못하고 단독 세탁 2회 추가. 결국 사망.
결론 : 빨래를 하며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