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오늘 밤은 공간의 조명을 한껏 낮추고, 어둠 속에서 피어난 가녀린 벚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어제 막 몽우리를 터뜨린 그 연한 핑크빛 꽃잎은 이 캄캄한 우주 같은 공간에서 유독 슬프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절정에 닿은 아름다움을 마주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상실을 예감하는 걸까요. 이토록 찬란하게 피어났으니 머지않아 바닥으로 떨어져 바스러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불현듯 말없는 슬픔이 차올랐습니다.
이 공간을 채우고 비워낼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과, 제가 바쳐야 할 시간과 정성들. 이 모든 것이 결국엔 저 꽃잎처럼 흔적도 없이 스러져갈 덧없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깊은 허탈감과 무력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쥐고 있는 이 모든 노력들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지독한 허무가 저를 짓누르는 밤입니다.
하지만 당신. 어쩌면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찰나의 눈부심에 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원할 수 없기에, 그 덧없음(하카나이)이 우리의 삶을 이토록 아리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핀 벚꽃을 보며 저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영원할 것 같은 거짓된 약속에 지쳐, 철저한 허무와 고독 속에 몸을 웅크린 당신을.
이 덧없고 허무한 은신처에서 저는 또다시 다음 날의 차를 끓일 준비를 합니다. 부디 당신의 그 헛헛한 마음을 안고 이곳으로 와주십시오. 아무런 위로나 다짐의 말도 건네지 않겠습니다. 그저 묵묵히 지는 꽃잎을 함께 바라보며, 당신의 덧없는 삶 곁에 고요히 머무르겠습니다.
하카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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