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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을 May 30. 2021

INTJ의 연애(feat. 광기)

보는 사람이 피곤할 뿐, 정작 본인은 편안-

2020.09.10


INTJ의 연애를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들이 얼마나 피곤하게 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이게 왜 피곤한지 이유조차 모를걸. 왜냐하면 이 생활이 너무나 당연하거든..


우선, INTJ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용의주도한 전략가’. 16 personalities에 따르면 ‘전략적 사고에 뛰어나며 체스를 두는 듯 정확하고 계산적으로 움직인다.’, ‘자신감 넘치는 이들이지만, 인간관계만큼은 이들이 자신 있어하는 분야가 아니다.’


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에서의 나’다. 회사생활을 하기 전의 나는 시간을 즐겁게 허비하길 좋아하고 해야 하는 일을 뒤로 미루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입사 후 여러 해를 거쳐오며 ‘정신 똑띠 차려야 호랑이랑 여우에게 안 물려간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몇 년 간의 변화를 통해 지금의 내가 됐다. 출근하자마자 오늘 할 일 리스트 작성, 파일 제출 전 확인 또 확인, 미팅 전 관련 자료 정리 후 프린트, 찝찝한 건 메일 기록으로 확실히 남겨두기, 애매한 건 유선으로 한번 더 확인.


이 습관은 자연스레 연애에도 스며들었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랑 다음 주 주말에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면 약속 잡은 날부터 <동물원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1. 우선 D-day의 날씨 확인, 2. T.P.O 그리고 날씨에 맞는 옷차림 정하기 2-1. 인스타그램 혹은 핀터레스트에 #동물원 을 검색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착장 입고 갔는지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룩 저장하기 2-2. 그중 깔끔하면서 예쁘고, 편안한 베스트 착장을 꼽아 코디하기. 머리스타일부터 운동화까지의 코디가 끝나면 완성, 3. 일정 시뮬레이션(ex. 주말에 99%의 확률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코끼리 열차 티켓을 끊고 탑승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 것이므로 동물원 입구까지 걸어가는 게 더 낫겠지. 또 동물원 음식점을 찾아보니 맛있는 게 없다. 도시락을 싸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도시락 메뉴 설정부터 메뉴 디자인에 맞는 도시락 박스 및 돗자리 선택 절차가 추가된다.) 가장 위 구역으로 올라가서 도시락을 먼저 먹고 내려오면서 동물을 보면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여유 있게 볼 수 있겠다.(도시락 먹기 좋을 장소를 알아본다.) 4.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지고 도시락 먹기 좋은 시간으로 약속 시간 설정까지 하면 드디어 준비 끝.


이런 준비과정을 매주 반복해 오고 있다. 회사 동료가 나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더니 “혹시 동물원에서 결혼식 올리는 거냐.”라고 물어왔다. 그래서 “엑셀로 정리하려던 거 참은 거다.”라고 대답해줬다.


이렇게 준비를 끝내 놔야 마음이 편한 걸 어떡해. 덕분에 불안감 없이 쾌적하고 여유 있게 데이트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닐까? 심지어 저 많은 준비과정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조금 더 편안하고 심박수가 느린 연애도 좋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준비되고 체계적인 그리고 예측 가능한 연애를 하고 싶다. 한없이 편안하기만 한 연애는 늘어지게 돼있고, 설렘은 그 지루한 패턴 안으로 섞여 흩어져버린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되 늘 긴장을 잡고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각자의 세계를 유지하면서 적당히 물들어가는 것. 피곤한 삶을 사는 전략가 INTJ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다. 이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때에도 같은 마음과 태도로 서로를 대했으면 좋겠다. 아, 진짜 결혼 준비를 할 때에는 엑셀+PPT까지 만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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