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연인에게' 리뷰
사랑해. 나도 사랑해.
많이 사랑해. 나도 많이 사랑해.
수술 후 회복실에서 잠이 깬 아슬리. 그리고 곧장 남편 사이드에게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절절한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하던 남자였다.
독일에 살고 있는 그녀는 병원을 나와 정신없이 그를 찾는다. 받지 않는 그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그가 다니고 있는 미국 항공 학교에 전화를 건다. 때는 2001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다. 그녀의 출렁이는 눈빛과 두서없이 집으로 내달리는 몸, 긴장에 풀려버린 다리는 보는 사람의 애간장마저 녹여버린다.
그들은 아슬리 엄마의 반대에도 오로지 사랑만을 믿고 결혼했다. 하지만 5년간의 만남 동안 미친 듯이 그를 찾아 헤맨 건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처음으로 그가 그녀를 떠났을 때, 본인이 떠났다는 사실조차 비밀에 부치게 강요하더니 이제는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슬리의 좋지 않은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그녀가 수화기를 통해 그의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심장이 저 밑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극장 내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나는 아슬리의 옆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출렁이는 눈과 깜깜한 현실까지 모두 생생하게 느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사이드는 언제 그런 결심을 했던 걸까?
대학교 캠퍼스에서 특정 종교 친구들과 어울렸을 때부터?
아슬리가 너의 조종사 꿈을 응원한다고 했을 때부터?
아슬리의 엄마가 결혼을 반대했을 때부터?
아니, 아니면 그 훨씬 전부터?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았던 그 ‘사랑’은 진짜였을까?
멀리서 살고 있는 자기 가족에게 너를 보여주고 싶다며 항공권을 쥐여 주고, 4인용 식탁을 사 와 아이가 함께할 행복한 미래를 그리게 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슬리도 모르는 어딘가로 떠나 버리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며 짐을 챙기고, 홀연히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제삼자의 입장으로 봤을 때 분명 ‘사랑’이 아니다.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아슬리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나 보다. 사랑이 뭐길래 그녀는 그를 끊임없이 용서하고, 갈구하고, 또 수용한다.
사이드는 마지막까지 이기적이다. 홀연히 떠난 후에 편지를 통해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동시에 자신이 한 선택은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며, 그녀에게도 함께 자부심을 느끼라고 말한다. 사랑했던 추억에 내려앉은 먼지 한 톨까지 털어내고 싶을 심정 아닐까? 그녀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슬리는 그의 편지를 붙잡고는 그의 요청대로 꽤 자긍심 있는 표정을 내비친다.
잔잔한 화면들과 달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내용에 꽤나 큰 반전이 숨어있는 영화다. 영화 전반에서 흩뿌려진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다 보면 눈치 빠른 사람은 사이드의 계획을 금세 알아챌 수 있지만, 알고 봐도 꽤 충격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슬픔과 분노를 안겨주었던 큰 사건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디테일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일 그 뒤편에서 일어났던 개인적이고도 섬세한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신선함과 동시에 오래도록 남을 여운을 선사한다.
원글: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