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하늘 Sep 26. 2023

못생긴 손, 그래도 괜찮아!

국민학교 6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 드신 남자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손을 보면서 관상을 보듯 재능을 알려주신 적이 있었다. 손가락이 길고 얇은 애들에게는 예술가의 손, 하얗고 야리야리한 손은 공부하는 손, 손이 크고 뼈마디가 울퉁불퉁한 손은 노동자의 손이라고 하였다. 내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손은 예술가의 손도 아니고, 공부하는 손도 아닌 노동자의 손이었다. 손가락이 짧진 않았지만, 마디가 굵고, 크고, 투박해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손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전엔 미처 몰랐던 예쁜 손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내 손을 점점 초라하고 부끄럽게 여겼고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있을 때 주먹을 쥐고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넌 손이 왜 이렇게 못생겼니? 하하하!’, ‘네 손은 노동자 손이구나! 노동일을 하겠어~’ 사람들의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지레 겁먹고 창피했다. 손바닥은 보여줄 수는 있었지만, 손가락 모양이 드러나게는 절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손톱 모양이 어떤지 이야기를 할 때면 손가락을 구부려 손톱만 보여주었다. 어쩌다 손가락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손가락은 내 최대 콤플렉스였다.

    

스무 살 살 때 드디어 나도 남자친구가 생겼다.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손가락부터 관찰했다. 역시나 하얗고 길고 얇은 공부하는 손이었다. 밤늦게까지 전화통을 붙잡고 얘기하고 늘 붙어 다녔지만, 숨겨야 할 비밀의 손은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처음 손을 잡게 된 날 설렘보다 손을 들킬 것 같은 부끄러움이 더 컸다.      

그날 남자친구에게 “나 손 못생겼지? 6학년 때 샘이 이런 손은 노동자의 손 이래.”라고 창피함을 무릎서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아니, 괜찮은데!” 그는 또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마음은 따듯한 햇살을 받은 것처럼 환하고 밝아졌다. 면죄부를 받은 그날, 더 이상은 감추어야 할 ‘죄’가 아니라 ‘괜찮은 손’, ‘괜찮은 나’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손을 펼 수 있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주위 반응을 살피면서 손을 내밀었다. 신기하게도 마음속에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이 있었다. 문둥병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사람이 깨끗해진 얼굴을 자랑하고 다니듯!      


내 손이 예뻐진 건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마디마디가 굵어지고, 거칠어지고 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손끝이 휘어져 마귀할멈 손가락 같지만 미워하기보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 손 안 예쁘지?”, “남자 손 같지?” 이제는 먼저 손을 보여주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해 준 남자친구의 “괜찮은데!”라는 말은 내 손을 인정해 준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나도 무뚝뚝한 내 손을 예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