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종말

또는 생의 종말

by 이연

밤이 주는 매혹에 깊이 빠져들어 본 적이 있는가? 낮이 지배권을 행사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밤의 장막을 걷으며 모습을 드러내고, 아주 천천히,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환상과 비현실이 일어나 옷자락을 드리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어둠 속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기묘한 감각이나 작은 비현실성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익숙하던 것들이 낯설어지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구성하던 실제의 것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다. 이윽고 등 뒤로 굳게 닫혀 있던 어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를 미지로 이끄는 “저 상아의, 혹은 뿔의 문“.


아주 거대한 그 문을 지나면 꿈과 신비가 몸을 들어 올려 나는 거짓말처럼 간단히 존재로부터 벗어난다. 중요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더는 중요하지 않고, 존재에 달라붙어 있던 고통마저 더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환상이 무의식과 뒤섞여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마치 스크린 위에서 영화의 필름이 빠르게 감기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 안에는 가끔 잘못 얽혀든 나의 과거도 있다. 한때는 아름답고 서글프게 느껴지던 기억들이지만, 이상하게 어떤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나는 그저 검은 물속을 계속해서, 편안하게 헤엄쳐 나갈 뿐이다.


강렬한 감정도, 동요도 없이 고요하게 나를 뒤덮어 해방시킨 밤. 만약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거기에 자유가 있다. 무한하고 아름다우며 치명적인 자유가 나를 환희에 빠트리고 병들게 한 것과 나란히 서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끔찍하게 짓누르는 시간 대신 꿈과 같은 질료로 이루어진 형상에 굴복하고 싶다. 언젠가 나를 태워버릴 빛, 저 멀리 보이는 무(無), 순수하고 지극한 암흑. 고통과 절망을 초월한 문 너머의 세계, 그곳에서라면 모든 게 어쩌면 하나의 밤으로 합쳐져 “한결같이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엘리자베트는 그들의 밤이 종말을 향해 가파른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종말은 시간을 질질 끌 것이고, 그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장 콕토, 《앙팡 테리블》


언젠가 꿈에서 나는 먹색이 깔린 음울한 하늘 아래 서 있었다. 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는 습한 공기, 덥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지나치게 눈부신 가로등 불빛 아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내게 저 멀리 칠흑처럼 검은 산이 보였다. 지평선의 위치조차 구분할 수 없는 미묘한 어둠 속에 잠긴 채, 붉게 점멸하는 송전탑의 불빛이 눈앞을 번쩍였다. 그건 검은 천사들이 길을 잃은 내게 보내는 신호였을까? 나는 곧장 뾰족하게 솟은 나무 사이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신호는 도무지 바뀌지 않았고, 얼마 안 가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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