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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DBD Apr 18. 2023

Le Labo : 르 라보

Brand dict.

"We believe..."


Le Labo





우리는 믿는다. 르 라보를 설명하라면 이 문장은 빠질 수 없다. 향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브랜드 르 라보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매니페스토 (: 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인 선언) 라는 문장 아래 적힌 르 라보의 선언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향수병은 너무 많으며 그 향들은 영혼이 충분하지 않다고 믿는다.  

    우리는 향기의 영혼이란 향이 만들어지는 의도와 향을 준비할 때의 관심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우리는 좋은 향수란 충격을 선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의 충돌로  

    우리는 좋은 향수란 반드시 불손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동물들보다 뉴욕 사람들에게 제품을 테스트하는 것이 더 인도적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유명인들도 제 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명품 향수의 미래란 장인 정신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손으로 고른 장미, 손으로 부은 양초, 손으로 만든 향수, 그리고 악수 계약과 같은 사려 깊은 손에 담긴 영혼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 가까이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영혼들을 믿는다.  

    우리는 Hafiz가 지닌 삶의 견해를 믿는다. - 훌륭하게 행동해라, 항상 훌륭하게 행동해라.  

    우리는 당신이 현대적인 도구들을 치우고 길을 따라 장미 냄새를 맡을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젊음이 한 번뿐이라고 믿지만, 우리는 영원히 미성숙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설명이 예술을 죽인다고 믿는다. 그러니 앞선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길!  



다소 길고 어딘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문장들은 르 라보의 제품 철학과 브랜드 철학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르 라보는 '실험실'이라는 브랜드 컨셉을 주제로 제품 디자인은 물론이고 라벨까지 톤온톤으로 맞춰간다. 르 라보라는 브랜드 네임 역시 프랑스어로 '실험실'을 의미하고 있어 이름에서 비롯된 컨셉이 아닐까 싶다.


르 라보의 라벨링은 아주 심플하고 간결하다. 그만큼 공병 디자인도 굉장히 심플하다. 모든 향이 동일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나오고, 라벨 역시 이름만 다르게 한 채로 나온다. 이름 역시 르 라보의 기본 철학인 '심플'에 기반하여 지어진다. 길어봤자 세 음절을 넘지 않는 향수 이름은 특별한 숫자와 함께 붙는다. 이 숫자에도 특별한 의미가 숨어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향인 '상탈 33'은 33개의 향료가 들어갔다는 의미다. 직관적이면서도 깔끔한 네이밍인데도 잘 된 브랜딩 덕분에 마치 고심 끝에 붙은 이름처럼 더 멋지게 느껴진다!


실험실이라는 브랜딩은 향수를 구매할 때도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향수는 모두 제작이 완료된 채로 판매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실험실 안은 완성품보다는 미완성이 어울리는 법. 시향을 위해 준비된 향을 맡아보고 하나의 상품을 고르면 즉시 소비자가 볼 수 있는 곳에서 향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마치 어느 과학자의 실험실을 엿보는 기분으로 우리는 스포이드 하나하나 천천히 떨어지는 향의 방울을 고요히 지켜볼 수 있다. 완성된 향수병에는 특유의 실험실 느낌이 물씬 나는 투박하고도 깔끔한 라벨에 사용자의 이름 혹은 원하는 문구를 넣어 마무리해준다. 이미 나와있는 기성 제품이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향이라는 아름다운 모순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새로운 향을 만들어낼 때도 르 라보의 일원들은 향수를 제조하는 조향사가 아니라 어느 실험실의 과학자 같은 포지션을 취한다. 세상에 없던 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어떻게? 익숙한 향과 새로운 향의 결합으로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도록.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르 라보의 향들은 같은 상탈, 베르가못이라도 타 브랜드와는 조금 다른 독특한 지문을 갖는다. 맡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르 라보의 그런 정신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향이 있다면 단연 '어나더 13'이 아닐까? 호불호가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매니악한 향으로 유명하다. 어떤 이들은 어나더 13을 두고 '포근한 향', '따스한 향' 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극단적인 표현으로는 '영안실 향', '차가운 향' 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실제 시향자들의 평은 극명하게 나뉜다.


13개의 향료가 들어간 어나더 13은 그런 점에서 르 라보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본다. 예쁘고 좋은 향, 대중적인 향을 만들지 않고 브랜드만의 마이너한 향을 고수해 출시하는 것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명품 향수 중에서도 르 라보를 꾸준히 찾게 하는 매력이다. 원료 자체를 존중해 그 향을 최대한 살려 투박하고도 자연스러운 착향을 완성해내는 향수야 말로 향수가 바라봐야 하는 지향점이 아닐까.


예쁘고 누구에게도 무난할 향은 세상에 참 많다. 하지만 향기란 곧 그 사람을 브랜딩하는 하나의 요소다. 혹자는 호불호가 극명한 향이라고 하지만 세상 모든 브랜드가 같은 브랜딩을 한다면 과연 매력적일까? 어느 한 사람에게만 극강의 호를 선사한다면 그것만으로 최고의 브랜딩, 최고의 향수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여전히 르 라보의 실험실 안에서 일어날 여러 영감과 사건들을 기다리며, 또 어떤 유니크한 향을 맡아볼 수 있을지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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