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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상아 Apr 27. 2024

발크기

그날은 평범한 휴일중의 하루 였다. 한 달이 30일이라 설정하면 나의 휴일은 10정도 된다. 3분의 1을 쉰다는 말이다. 한 달의 삼분의 일. 그 많은 휴일 중 평범한 하루. 나는 그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 중에 여익과 나눈 대화를 아직까지 곱씹어 본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연필을 들었다. 계속 생각나기 때문에. 혹시 좋은 것이 나올까 싶어서.

 


 여자치고 발이 큰 편인 나는. 아니. 160cm남짓 되는 키에 비해 발이 큰 편인 나는. 발가벗고 맨발로 서있는 나를 유심히 보던 여익은 가만히 발을 바닥에 대고 있어 보라 했다. 여익은 줄자를 꺼내 나의 발을 꽤나 정교하게 이리저리 각도를 보고 재곤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눈을 추켜올리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발이 큰 게 아냐. 발바닥 크기는 적당한데 조금 넓고, 발가락이 아주 길다. 특이 두 번째 발가락이 길어서 네가 240도 신을 수 있는데 두 번째 발가락 때문에 245나 250을 신는 거야. 조금 작은 신발 신으면 자동적으로 두 번째 발가락이 굽혀지지?"


"응. 맞아."

 


 응. 그렇다. 나의 발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발가락이 길다. 특히 두 번째 발가락이 곧고 쭉 뻗었다. 두 번째 발가락이 만약 첫 번째 발가락 길이와 얼추 비슷했다면 나는 5mm는 더 작은 신발을 신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두 번째 발가락은 내 기준의 예쁜 신발 사이즈를 신을 때 늘 불편한 발가락 이였다. 두 번째 발가락이 편하면 키에 비해 신발이 비정상적으로 커져서 예쁘지 않았고, 예뻐 보이는 신발 사이즈로 신으면 두 번째 발가락이 늘 굽혀 있어 처음에는 두 번째 발가락만 아프다가 나중에는 발전체가 다 아팠다. 그렇다고 걷는 걸 멈추느냐고. 아니.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심정으로. 나는 절대 신발사이즈를 늘리지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으로 통증을 종아리에 쑤셔 넣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발가락의 고집을 누르고 나는 이겼다. 두 번째 발가락은 본인의 패배를 발톱 밑의 도톰한 굳은살로 대신 인정 했다. 그렇게 나는 당당한 승리자의 모습을 하고 내 기준의 예쁜 사이즈의 신발을 신고 살았다. 나의 두 번째 발가락을 항상 아팠고, 움츠려있었고, 늘 고통스러웠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두 번째 발가락의 등에 박힌 도톰한 굳은살은 점점 크기를 더해 갔고, 더 시간이 지나 서는 신발을 신으면 두 번째 발가락이 톡 튀어나와 누가 봐도 작은 신발을 우겨넣은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 이다. 나는 이 조용하고 담담한 힘겨루기에서 이겼지만 졌고. 그는 졌지만 이겼다. 그렇게 다시 승패를 뒤집을 수 있을 긴박한 역전의 타이밍의 그 때. 그 즈음 작고 귀여운 운동화에서 큼지막하고 투박한 워커로 유행이 바뀌었다. 지금 나는 나의 두 번째 발가락과의 힘겨루기는 휴전 상태다.   


 그 이전에 아마 내가 나의 두 번째 발가락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 했더라면 두 번째 발가락이 고통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어린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때려치우고, 다시 이야기 해볼까. 모두 아는 미신이야기. 첫 번째 발가락이 길면 아버지가 오래살고 두 번째 발가락이 길면 어머니가 오래 산다는 미신. 그러니까 본인의 첫 번째 발가락은 아빠고 두 번째 발가락이 엄마라는 그 미신을 나는 안다. 아마 너도 알 것이다. 나는 내 발가락과 싸우듯 그렇게 오래도록 내안의 엄마라는 존재와 싸웠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내 발사이즈. 엄마. 엄마. 그리고 엄마를 나는 고개 들어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억지로 고개라도 돌려지면 눈길이라도 저만치 돌려버리는 짓거리를 했다.


아주 어렸을 때 그 미신을 처음 접했던 날. 그 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 했다. ‘아아- 다행이다. 아빠보다 엄마가 더 많이 살아서.’ 그리고 그 생각은 모래시계가 뒤집혀 슬금슬금 밑으로 모래가 빨려 내려가듯


발톱을 자르며,


‘아 짜증나. 발가락 너무 길어. 엄마 너무 쓸데없이 오래 살아.’


안 맞는 신발에 발을 우겨 넣으며,


‘무슨 엄마는 맨날 술 먹고 골골대면서 이렇게까지 오래 살 필요가 있어?’  


그렇게 나는 생각 했다.


 

발사이즈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 두 번째 발가락의 둥근 동산의 굳은살이  “상아야. 이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을게 없어. 너를 위한 나의 최선책은 이렇게 굳은살을 만들어서 그나마 너의 고통을 덜어 주는 거야.” 이렇게 이야길 건넨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이야기 따위 듣기 싫은데 자꾸 보인다. 내가 고개만 숙이면 봉긋하게 올라온 두터운 굳은살이. 내 시야에. 자꾸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엄마의 배도 나에게 말을 건다. 복수마냥 지방으로 가득 차있는 배가 나에게 “이 몸은 워낙 약하게 태어나서 이런 고생 하며 살며 안 되는데 그래도 먹고 살려니 일해야 해서 이렇게 입맛 없어도 한 술이라도 더 뜨고 일하다 보니 쪄야하는 허벅지나 팔뚝은 안찌로 요래 내만 쪘네. 이 사람이 요 뱃심.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산다오. 산다오. 산다오.” 그런 멍청한 배를 쿠션삼아 끼고 앉아 한게임 고스톱을 치고 있는 엄마를 가만히 본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엄마의 배를, 엄마의 힘의 원천을 뚫어 져라 쳐다본다. 그래. 그래. 그래. 살자. 그 뱃살을 가지고. 내 두 번째 발가락을 가지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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