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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상아 Apr 28. 2024

질문

1


그날은 이상하게도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소변이 마려웠다.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가로질러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아싸. 담배 피워야지! 하고 가방에 든 담배를 꺼내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야간 일을 하는 엄마는 3시간 후에서나 집에 오니 엄마가 집에 도착했을 땐 집에 냄새가 다 사라진 상태일 테니까. 애매한 시간에 일어난 게 조금 짜증이 났었는데, 편하게 화장실에서 담배를 필 수 있게 되어서. 그래서 나는 좋은 타이밍의 소변이라 생각하니 짜증이 금방 사라졌다. 소변은 진즉에 끝이 났지만, 변기에 앉아 남은 담배를 태우며 밀린 카톡을 확인했다.


하릴 없이 확인했던 카톡에 또 들어가서 보고, 나오고를 반복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평소에 깨지 않는 이 시간에, 그것도 군대에 가 있는 동생이 전화하다니. 나는 동생의 전화를 받으며, 정말 좋은 타이밍에 소변이 마려웠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보통 무음으로 해두기에 보통의 일상이었다면 동생의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까. 내 "여보세요"가 끝남과 동시에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궤변을 소나기처럼 쏟아부었다. 나는 멍하니 동생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지금 뭘 하면 되는데?"     


수화기 너머 들려온 동생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냥. 알고만 있으라고. 아빠는 끝까지 누나랑 엄마가 모르는 채로 죽고 싶어 했는데,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그냥 알고만 있으면 된다."     


그렇구나. 나는 알고만 있으면 되는 거구나.      


"알겠다. 끊어라."     


그렇게 동생과의 통화는 종료되었고 바지는 발목에 걸려있고, 담배는 몇 모금 태우지도 못했는데 다 타버렸고. 나는 동생이 시킨 대로 "알고만 있으면" 된다고 했으니, 발목에 걸려있는 바지를 추켜올리고 담배를 변기통에 버리고 변기 물을 내리고 다시 잠자리로 가면 되는 일이었다.

 다 타버린 담배는 변기통에 버렸는데 다음 단계인 바지 올리기랑 잠자리에 다시 놉기를 하는 것을 잠깐 까먹은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동생이 알고만 있으면 되는 사람은 "누나"랑 "엄마"라고 했으니까. 엄마도 아마 이 소식을 들었겠지.

 그 날은 엄마에게도 좋은 타이밍이 있는 날 이었던 거 같다. 평소보다 일찍 끝나서, 야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이었다. 지하철에서 꼬박 졸고 있었는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여보세요”가 끝남과 동시에 나는 엄마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엄마, 방금 동재한테 이야기 들었나?"

"백종혁이 내보고 알고만 있으라고 했다는데 나는 그럼 할 거 없는 거 맞제?"

"엄마도 그냥 알고만 있을꺼제?"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알아듣게끔 설명해달라고 하며, 엄마는 쏟아지는 내 질문에 짜증을 냈다.

나는 동생이 나에게 소나기처럼 쏟아부은 궤변을 엄마에게 다시 전달 해야 했다. 답답했다.


그러니까-      


"아빠가 암이었고. 지금 오늘내일하고. 동재는 군대에서 고모 연락 받고 휴가 써서 아빠한테 가고 있고. 근데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랑 내는 모르게 죽고 싶다고 했는데, 백동재가 아예 모르게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방금 내한테 전화와서 말해줬는데. 내보고 그냥 알고만 있으라는데. 나는 그냥 아빠 곧 뒤지는 거 알고만… 알고만 있으면 되는 거냐고! 내가 할 거 없는 거 맞냐고! 나는 지금 그게 궁금하다고!!"

     

나는 또 담배를 두 모금도 채 피지 못한 채로 담배를 다 태웠고,

소변을 닦으려고 손에 쥐었던 휴지는 연신 내 얼굴을 훔치고 있었다.

동생 이야기의 먹구름이 내 머리 위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먹구름은 곧 소나기를 쏟아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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