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독립
이사 전날, 챙겨둔 짐을 바라보며 거실에 앉아 있었다.
몇 년 동안 나를 품어주던 공간이 낯설 만큼 조용했다.
옷장에 걸려 있던 옷들의 자리는 내 머릿속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그 순간,
이별이란 단어가 이렇게 조용히 찾아오는구나 싶었다.
결혼 전, 엄마와 함께 살던 집.
내가 어른으로서 책임을 배우고,
조금씩 나답게 살아가려 했던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흔적을 두고 떠나야 했다.
익숙함은 때로 위로가 되지만,
그 위로에 너무 오래 머물면
새로운 나로 나아갈 용기를 잃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이별은 슬픔보다 결심에 가까웠다.
이제는 조금 다른 삶의 문을 열어보겠다는 결심.
언젠가는 이 집을 떠나
엄마란 익숙한 존재에서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는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니 막연한 두려움과
혼자 남겨질 엄마에 대한 걱정이 올라와
독립을 사치라 여겼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떠남은 생각보다 덜 아프고,
생각보다 더 조용하게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다는 건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 서야 한다는 뜻이었지만,
그만큼 나를 믿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새로운 공간은 아직 낯설고,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익숙함을 잃고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
익숙함과의 이별은 결국 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별은 늘 익숙함을 잃는 일인 줄만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알겠다.
떠난다는 건 어쩌면
나를 더 잘 안아주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이별도 괜찮다.
익숙함을 지나, 나는 조금 더 나답게 자라 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