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많은 날이 Feb 16. 2023

장모님은 내 술친구

장모님과의 두 번의 한집살이

여건이 안 되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자랑 같아 보일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진중하게 장모님과의 한집 살이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다들 알다시피 육아는 도움의 손길이 꼭 필요하다. 아이 한 명에 못해도 둘은 있어야 어느 한 명이든 밥이라도 먹고 생활 유지가 되지 독방 육아에 홀로 혈혈단신 육아를 하는 분들의 노고야말로 감히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 부부도 어쩔 수 없이 친정 엄마에게 도움의 손길을 부탁드렸고 다행히 이를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너무 감사드린다. 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장모님은 우리 부부에게 귀인이시다. 먼 대전 집을 마다하시고 하시는 일도 접고 경기도 화성 아무 연고지가 없는 이곳에 오셔 내어드린 방 한  육아부터 집안일을 마다하지 않고 도와주시는 장모님.


그런데 너무 죄송하다. 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가장 흔한 사회적인 이슈 중에 하나가 황혼 육아이다. 힘들게 아이들 다 키워 놓았더니 이제는 손주들 키우는데 보탬이 되어 달라? 이런 불효가 또 있을까? 가뜩이나 어려운 백년손님 사위와의 동거라니. 남은 노년의 삶에 우리가 찬물을 끼얹은 것과 다름없다.


장모님은 팔방미인

장모님은 굉장히 외향적이시고 어디서든 뚝심이 대단하셔 그 기세가 엄청나시다. 사람들과 만남을 즐기시고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이곳저곳 안 다니신 곳이 없으실 정도 바깥에서 기를 받는 스타일이시다. 하물며 일반 사람은 한 번도 다녀오기 힘든 울릉도와 독도를 두 번이나 다녀오셨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생각하시는 데로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기시는 실사구시 파이시며 솔직하심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으시다.


체구는 아담하시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에 누구에게도 기에 눌리지 않을 단단함이 실로 장군의 기질이 있으시다. 홀로 두 아이를 밑바닥부터 키우셔 모두 선생님으로 자리 잡게 하셨던 그 세월의 흔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 외향적인 분을 모셔다 황혼 육아의 길로 끌여들인게 죄라면 죄라 하겠다.


장모 = 톰?
사위 = 제리?


이런 장모님과 무려 총 1년 6개월(첫째 1년 + 둘째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내고 있으며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약 상으로는 조만간 만료가  예정이지만.

 

처음 첫째 때에는 아무런 경험이 없어서 장모님과 어떻게 한집 아래 함께 살지 막막했다. 특히 우리 부부는 정말 느긋하고 집콕에 덤벙대는 스타일이어서 장모님과 한집 살이가 가능할지조차 처음에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육아가 전우애 비슷한 동지애를 만들어 주었고 자연스럽게 장모님과 함께 장단을 맞추게 되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장모님과 나의 플레이는 운동으로 치면 스매시 훈련용 탁구 스타일이다. 잘 넘긴 타구에 가차 없이 때리는 스매시 훈련. 나는 보기 좋은 먹잇감을 장모님께 넘겨드리고 그 먹잇감을 장모님은 인정사정없이 물어뜯는다.


처음에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장모님의 시도 때도 없는 지적에 나름 상처를 받기도 했다. 무엇이든 그때그때 바로바로 이야기하시는 성격에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히는 날에는 국물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거기에 적응해 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집 마당에 풍류 즐기듯 허허 거리며 웃는 나그네와도 같은 내 성격도 한몫했으리라. 장모님의 말에 그저 허허 웃음 지으며 모든 것을 긍정하는 말투는 장모님의 전투력을 상실시키기 일쑤였다.


"너는 무슨 말만 하면 긍정이니" 장모님의 핀잔에 "장모님 이러니 따님하고 같이 사는 거예요" 헛웃음 나오게 만드는 게 힘 빠지는 말투다.


서로를 향한 진심

하지만 우리의 관계에는 허 대신 실이 있는 것이 핵심이다. 장모님과 나는 서로의 진심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내보다 더?


장모님이 티격태격 표현에 서투실지 모르지만 전심으로 도와주신다. 우리 부부가 집안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을 잘 헤아려주시고 거들어주신다. 그 정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최대로 표현하고 가족에 헌신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


혹자는 이미 황혼 육아에 불효가 시작되었는데 무슨 신뢰가 있겠다먀는. 장모님의 가끔 하시는 이 말씀에 나는 그저 안도할 뿐이다. 


"그래도 우리 사위한테는 내가 너무 고마워."


술 한잔에 장모님 과거 하나


가끔씩 점심 혹은 저녁 상에 살짝 육아의 여유가 생길 때면 장모님과 술 한잔 기울일 때가 있다. 장모님의 도움으로 생긴 약간의 여유를 장모님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육아의 회포도 풀 겸 오늘 먹지 않더라도 소주 두 병 막걸리 한 병 사다 놓는 것이 습관이 됐다.


"웬 술이야"


"장모님하고 한잔 하려고요"


그만큼 장모님과의 술 한잔은 내 인생의 낙이 된 지 오래다. 이제 육아로 회사나 사회에서 하는 회식은 나가본 지 오래다.


술 한잔이 장모님의 인생 한 페이지다. 그 옛날 어렸을 적 2남 4녀 중 샌드위치로 끼여진 앞에서는 4번째 뒤에서는 2번째인 차녀로 자라오셨던 이야기. 중간중간 크고 작은 집안 이야기와 그 사이 상처가 되셨던 일들. 술 한 병이면 그 이야기가 안주가 되고 조금씩 젖어든다.


옆에서 모유수유로 술을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나와 같이 맞장구를 치며 장단을 맞추는 아내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측은해진다.


장인어른 없이 사셨을 그 모정세월.


표현은 서툴러도 같은 마음이셨단 것을.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시댁 혹은 특히 친정 쪽과의 관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실 우리도 와이프와 장모님과 사이에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함께 사는 동안 서로 육아 방식의 차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장모님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친정 엄마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사위와 장모와 관계도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사위 사랑은 장모다.  장모님 사랑을 받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담금질한다.


존경하고 아끼는 장모님, 늘 건강하시고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 가지시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위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람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