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글: 시신이 움직인다고??
간혹 그런 말을 듣는다.
“염할 때 시신이 벌떡 일어나는 일도 있다더라?”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라 처음에는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번씩 맞장구를 쳐주고 말 때도 있다.
“아니다. 그런 일은 없다.”
라고 이야기해 봐야 결국은 “누구누구가 직접 봤다더라.”하고 억지 끝에 승자의 미소를 띠어야 만족하는 상대를 진정시키려면 그것이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분야의 것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분야에 대한 설명을 하면 경청을 하기 마련인데 아주 가끔은 전문가들의 견해에 자신들만의 살이 조금씩 보태어져서 결국엔 서울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도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사람이 서울 사는 사람보다 서울을 더 잘 아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장례도 그렇다.
실제로 현장에서의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사람이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을 해온 사람들보다 장례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또 그 지식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 식으로 설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그가 가진 장례에 관한 지식이 대부분 “~카더라.”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삼우제’를 ‘사모제’ 또는 ‘삼오제’라 하는 것도 그렇고 시신을 습(몸을 닦고 옷을 입히는 일)하는데 시신이 벌떡 일어나더라는 것도 그렇다.
그 외에도 절은 어떻게 하느니 술잔은 어떻게 올리느니 하는 등의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시신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정말 시신이 움직이는 걸까?
사람의 몸이 생체활동을 멈추게 되면 즉 임종을 맞으면 직후 1차적으로 모든 근육이 이완이 된다.
그리고 임종 후 1~2 시간이 경과하면 사후경직이 시작된다.
말 그대로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이다.
첫 이완 때 손바닥이 펴지면 펴진 대로 발바닥이 늘어지면 늘어진 대로 눈을 감지 못하거나 입을 벌린 그 형태로 굳게 되는데 대체로 경험이 많은 장례지도사들은 사후경직이 오기 전 눈을 감기고 입을 다물리거나 손과 발을 가지런하게 해서 죽은 이의 몸을 바르게 정리해 주기 마련이다.
이것을 수시(收屍)의 한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사후경직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입관 이후까지 경직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몸이 뻣뻣하게 굳은 형태로 습을 거치고 염을 거쳐 입관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의 시신이 움직인다는 얘기는 습의 과정에서 나온다.
굳어있는 시신을 깨끗이 닦아 드리고 수의를 입히려면 굳어있는 시신의 근육들을 풀어줘야 하는데 이때에는 어린 아기를 다루는 것과 같은 섬세함과 시신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굳어있는 관절들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유연하게 한 다음 누워있는 아기에게 옷을 입히듯 조심스럽게 시신을 안아 수의를 입힌다.
이때 주의할 점이 관절을 유연하게 풀어줄 때이다.
단순히 사후경직에 의해 굳어버린 관절이라면 몇 번의 움직임을 통해 그리 어렵지 않게 유연성을 회복할 수 있으나 오랜 지병 또는 활동이 없는 상태로 퇴화되어 굳어버린 관절은 풀어지지 않는다.
노인들의 무릎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무릎을 굽히고 있던 경우 그 상태로 관절이 굳어버려 수시 과정에서 바로 잡아드리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관절은 꺾인 상태로 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무릎을 펴기 위해 억지로 관절 부위에 물리력을 가했을 때 시신의 몸 전체에 힘이 전해져 약간의 움직임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아마도 이 부분에서 살이 보태어져 시신이 벌떡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상상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억지로 물리력을 가해 무릎을 펴고자 하는 이들도 없을뿐더러 물리력에 의해 굽은 다리가 펴졌다면 뼈가 부러졌다는 것과 같은 소리여서 고인의 시신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배려하는 이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겪은 이십몇 년의 시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어이없게도 아주 가끔 시신이 벌떡 일어나는 것보다 더 놀라는 일이 생기곤 하는데 그것은 바지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 때문에 벌어지는 풍경이다.
한참 고인의 몸을 정돈하고 수의를 입히는 일에 신경이 곤두서있을 때 불현듯 적막을 깨트리고 “전화왔숑~~!!전화받으숑~~!!” 하고 울려 퍼지는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그렇다.
그나마 소리로 울리면 좀 낫기는 하다.
진동으로 조정해 놓은 전화기가 고인의 몸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에 닿아 부르르 떨어대며 집중을 방해하는 알림이라니 이 얼마나 섬찟한 일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