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일곱 번째 글: 남자는 울지 않는다. 2

by tank

아들 친구의 부모이기도 하고 나와 오랜 인연을 가진 지인의 전화를 받은 것은 밤늦은 시각이었다.

“조카가 갑자기 사망했는데 이곳 병원 장례식장에 비어있는 빈소가 없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 좀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도착한 병원에는 그의 집안사람들이 모여 분분히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소에 심장 쪽에 지병이 있기는 했어도 큰 탈 없이 생활해 오던 지인의 조카가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앉아 동생과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심장이 멎어 급히 119에 연락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병행하며 병원 응급실로 왔으나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는 것과 마침 그 병원 장례식장도 빈소가 다 차 빈자리가 없어 그곳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차에 내가 그쪽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낸 지인의 부탁에 인근 장례식장의 현황을 파악하고 가까운 곳으로 이송한 다음 장례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


유족이라고는 홀어머니와 하나 있는 동생뿐이었으므로 친척들이 손을 거들어 장례를 진행하는 중에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장성한 자식을 앞세운 고인의 어머니였으므로 동생 되는 이와 친척들에게 고인의 어머니를 살펴줄 것을 당부하긴 했지만 정작 살피지 못한 것은 동생의 심경이었다.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내 우애가 좋았던 만큼 그 역시도 커다란 상실감에 빠져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입관 전 작별인사를 할 때 혹시라도 어머니가 잘못될까 하는 걱정에 “앞선 자식은 보는 것이 아니다.”라며 친척들이 그의 어머니를 만류했으나 “이제는 보고 싶어도 더 볼 수 없는 모습이니 꼭 봐야겠다.”며 입관에 참여해 오열하는 어머니 곁에서 묵묵히 어머니를 부축하고 있던 동생은 어머니와 친척들이 모두 빈소로 돌아간 다음 내게 말했다.

“선생님.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고인과 동생만 남겨두고 입관을 문을 닫고 나와 그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밖에서 기다리는 내 귀에 동생의 처절하리만큼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한참을 울부짖던 그가 겨우 진정을 하고 문을 열고 나온 그는 “고맙습니다. 이제 울지 않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목례를 하고 빈소로 돌아갔다.


남은 장례 일정에 고인의 어머니와 동생의 상실감에 대해 걱정이 앞섰으므로 지인을 비롯한 친척들에게 몇 번이고 잘 살펴달라는 부탁을 했고 친척들 또한 세심하게 유족들을 보살핀 덕으로 고인의 어머니가 몇 번이고 혼절을 하긴 했지만 무사히 장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동생의 흔들리지 않으려는 평정심 덕이라 싶을 정도로 묵묵히 상주의 자리를 지켜낸 동생이 화장(火葬)을 기다리는 동안 내게 한 말은 이렇다.


“어머니가 안 계셨으면 저도 목 놓아 형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을 했을 겁니다. 저마저 흔들려버리면 어머니께서 더 힘들어하실 것 같아서 속으로 꾹꾹 눌렀는데 이 허망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위로의 말도 그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만히 그의 손을 잡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뿐이었다.


화장이 끝나고 봉안당에 유해를 안치한 후 돌아오는 장의차량 안에서 동생 되는 이가 장지까지 함께해 준 이들에게 인사를 전하며 그렇게 말했다.


“형의 장례를 위해 힘을 모아 주시고 이곳까지 동행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형을 잃은 저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제저녁 늦게까지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딱 오늘까지만 울고 그만 울자”라고 약속했습니다.

돌아가신 형님도 어머니와 제가 계속 슬픔에 빠져있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이제는 제가 어머니를 지켜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형님 몫까지 제가 어머니께 효도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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