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글: 어버이 은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부르기 힘들어지는 노래가 있다.
어릴 때는 노래 가사의 의미도 음미하지 못한 채 그냥 단순히 정말 아주 단순히 어버이날이면 당연히 불러드려야 하는 노래쯤으로 인식을 했었고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까지만 하더라도 축하의 노래쯤으로 여겨 목소리 높여 불러드렸으나 부모님께서 차례로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는 노래의 첫 부분만 들어도 괜히 울컥해지고 눈물이 맺히게 되니 노래가 시작되면 괜스레 자리를 피하거나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부러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부르면 부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천둥벌거숭이 같던 젊은 시절 무던히도 부모님의 속을 태워드렸던 일들에 대한 기억과 함께 무엇하나 제대로 살펴드리지 못한 죄책감들 때문이다.
크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나중에 잘 되면 떵떵거리고 사실 수 있게 해 드리겠다고 수시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큰소리치다가도 부모님께 힘이 되기는커녕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오히려 부모님께 짐을 더 얹히기만 했던 기억들은 두 분 모두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 생생히 떠오르기 마련이어서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내 아이들이 자라고 또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기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까지의 매 순간순간을 통해 내 아이들의 지금과 내가 부모님의 자식이었던 그때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내가 부모님께 못 해 드린 그만큼 왜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반성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내 아이가 첫 뒤집기를 하고 첫걸음을 하고 처음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감동과 환희를 내 부모님께서도 똑같이 느끼셨고 똑같이 기뻐하셨음을, 내 아이가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나도 그 곁에서 같이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것처럼 부모님께서도 똑같이 아파하고 힘들어하셨다는 것을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는 이 어리석음에 대하여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는 것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부모가 눈을 감아야 끝난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장성하고 나면 매정하게라도 독립을 시켜 자기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겠다지만 장성해 독립한 이후라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걱정과 염려는 끝이 없어서 장성하다 못해 호호 늙은이가 된 자식이라고 해도 여전히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더 크게 아파하고 자식이 힘들어하면 더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그 의미를 알지도 못한 채 어버이날이면 당연히 불러드려야 했던 노래로 알았고 조금씩 철이 들면서 부모님의 희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담아 불러드렸으며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는 지금에는 부모님의 자식들을 향했던 삶의 무게를 티끌만큼이라도 깨닫게 되어 차마 따라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되어버린 “어버이 은혜”
아주 가끔 유족들이 보는 앞에서 고인의 염을 하기 전 사전에 유족 중의 몇몇 사람과 의논을 거쳐 이 노래를 합창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이미 격해질 대로 격해진 유족들의 감성은 이 노래를 통해 더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노래의 중간쯤이 다다르면 누구도 따라 부르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범벅된 울음소리만 가득할 뿐이다.
조용히 염을 마무리해드리고 싶지만 고인, 특히나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 느끼는 자녀들의 감정변화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머지 진행을 이어가기도 한다.
더는 다시 볼 수 없는 모습 앞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드리는 노래.
어쩌면 그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겁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 아이, 그리고 내 아이가 낳은 아이와 그 아이가 낳은 아이에 이르기까지 영속적으로 이어져 행여나 잘못된 길을 가게 되지는 않는지? 행여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행여나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는 일은 없는지? 하고 노심초사하는 부모님들의 모습과 그런 부모님 품에 의지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그 노래에 살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