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스물네 번째 글: 쓸쓸한 죽음

by tank

아침 일찍 부고를 받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하며 평생 아껴 모아둔 돈을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통장에 꽁꽁 가둬둔 채로 요양병원비 계산 등의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인출할 수 있도록 해두고는 ‘내가 나가기만 하면 사후 장례비용이며 기타 유산의 사용처를 정하겠다.’ 하고 매일같이 퇴원할 날만 기다리던 노인이 계절은 아직 겨울이지만 날씨는 한 봄을 넘나드는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마지막에서 노인이 쓰러진 것은 대략 6년여 전의 일로 집 앞 길가에 앉아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의 손을 붙들고 무언가 하소연이라도 하듯 가슴을 치며 입을 가리켰으나 입에서는 말 대신 어어~ 소리만 나왔고 수십 년을 한 동네에서 같이 보낸 한 이웃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노인이 그냥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다가 증세가 이상해 보이자 바로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미 뇌 손상이 진행되어 언어능력을 잃어버린 노인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요양병원으로 입소를 하게 됐었다.


말이 나오지 않으니 온갖 몸짓으로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칠게 표현하는 노인을 뇌 손상에 따른 이상 징후로 판단한 병원은 노인에게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한동안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던 노인이 겨우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고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에야 필담을 통해 자신은 괜찮으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노인의 요구를 접할 수 있었으나 의료 규정이 있기도 하고 그가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이 평생 혼자 산 사람이고 팔십을 바라보는 고령이라 그의 뜻을 따라 퇴원시켰다가 만약 사소한 사고라도 생기게 되면 병원 측의 책임이 있게 되므로 무작정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퇴원을 해서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노인은 생각과는 달리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몇 번이고 몰래 병원에서 도망쳐 나오려고 시도를 했지만 그럴수록 병원 관계자들의 경계심만 자극할 뿐이었다.


노인은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이다.

해방 전에 태어나 전쟁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이남으로 내려온 그는 여타의 동년배들과는 달리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평생을 혼자 살면서 여행과 사색을 즐겼고 학습에 관심이 많아 늘 새로운 책들과 새로운 문물을 익히는 일에 몰두한 덕에 그의 집에는 언제나 책이 가득 쌓여 있었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노트북을 이용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거나 T.V를 시청할 정도로 현대문명에 익숙했다.


노인은 술, 담배를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답게 술. 담배를 하는 사람을 멀리했다.

노인이 스스로 벌 수 있던 시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인생의 대부분은 기초연금으로 생활해야 했지만 불필요한 지출이 없었던 노인은 주식이나 투자로 꽤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고 입버릇처럼 ‘언젠가는 사회를 위해 크게 한몫을 하고 싶다.’라는 포부도 있었다.


재산 중 얼마는 기부를 하고 나머지 얼마는 자신의 사후에 장례비용이라든지 묫자리에 대한 비용으로 정해놓고 때가 되면 노인 스스로 알아서 다 정리하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터라 노인이 갑작스러운 뇌 손상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몇몇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가 필담으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 어떻겠느냐?’하는 의견을 묻기도 했지만 그때마 다 노인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알아서 할 것이니 절대 내 돈에 손대지 마라’하고 강하게 반발했었다.


생각이나 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불귀의 몸이 되어 떠나가게 될 줄을.


부고를 듣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장례식장 관계자와의 통화였다.

무연고 공영장례이니 장례식장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는가마는 마지막 가는 길만큼은 한때 노인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손길로 보내드리고 싶다는 말에 장례식장 측에서는 흔쾌히 허락했고 노인은 자신의 바람대로 내 손길에 의해 마지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초라한 빈소에서(공영장례는 6시간의 기본 빈소 조문 시간을 제공한다.) 영정도 없이 명패만 올려놓은 제단에 차려진 노인을 위한 조촐한 마지막 밥상 앞에서 떠올린 노인에 대한 생각은 참 허망하다 하는 것이었다.


“나 죽으면 내 빈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꼭 밥은 먹여 보내달라”던 부탁도

“묫자리는 봉안당 볕 잘 드는 곳으로 해서 외롭지 않게 해 달라”던 부탁도

“장례 치르고 남은 돈은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해 달라”던 부탁도

아무것 하나 들어줄 수 없게 된 채

유해만 작은 오동나무 함에 담겨 봉안당 담당자에 의해 보관소로 이송되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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