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rby Jun 22. 2024

프라하의 굴뚝빵, 뜨르들로

Trdelník & Coffee in Prague, 2023

중세와 근대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전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라하. 프라하의 관광 코스 중 빠지지 않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유대인 지구입니다. 프라하에는 무려 13세기부터 구축된 유서깊은 유대인 지구가 있습니다. 


유대인 지구에는 대단히 오래 된 유대인의 예배당인 시나고그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나고그 때문인지, 저희가 인근을 지날 때 유대인 단체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선 글에서, 프라하는 나치 독일의 침공 때 재빠르게 항복한 덕분에 도시를 보존할 수 있었다는 내용을 적었었는데요. 의문을 가지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치 독일은 이 세상에서 유대인을 절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정부였는데, 독일이 점령했던 프라하에 어떻게 유대 지구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나치 정권이 프라하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 답은 듣는 사람의 말문을 막히게 만듭니다. 나치가 이 프라하의 유대 지구를 보존한 이유는, 지구상의 유대인을 모두 말살시킨 다음, 일종의 박물관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이 지구상에 이런 사람들이 살았었다 라는 거죠. 그래서 프라하의 유대 지구는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뜨르들로 이야기 전에 유대 지구 이야기를 한 이유는, 제가 방문한 뜨르들로 가게가 유대 지구 인근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뜨르들로와 유대인은 별 연관이 없습니다. 유대인 지구에 가서 뜨르들로를 먹게 된 이유는, 제가 유대인의 음식 인증인 '코셔' 인증을 받은 뜨르들로 가게를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관광지에서 유명 음식을 사먹게 되면 아무래도 고민이 됩니다. 프라하 구시가지 일대에는 뜨르들로 파는 곳 찾기가 어렵지 않은데요, 그러다 보니 이게 관광객 상대로 대충 만들어 파는 음식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관광객 상대로 한철 장사하는 가게라면 상대적으로 위생이나 맛을 보장하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 관광지에서 대충 만들어 파는 한식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프라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관광지 전반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어떤 가게로 가야 맛있는 뜨르들로를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유대인 지구의 뜨르들로 가게였습니다. 프라하에서 유일하게 유대교 율법인 코셔 인증을 받은 뜨르들로 가게가 있다는 이야기였죠. 유대교는 이슬람교의 할랄 푸드와 비슷하게 계율에 따라 처리한 음식에 코셔 푸드 인증을 한다고 합니다. 인증을 받고 판매하는 가게라면 (맛에는 별 영향이 없겠지만) 적어도 한 철 장사하는 가게는 아니겠거니 싶어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찾아가려고 구글 맵을 켜니 구글 평점 4.9는 덤. (지금은 4.8입니다.)






가게는 크지 않고, 역시나 관광지답게 대부분 관광객들입니다. 그래도 전 글의 소재였던 나세마소는 로컬 고객들이 제법 있어 보였는데 말이죠. 우리나라 꽈배기 가게 같은 느낌도 주는데, 그래도 가게가 깔끔해 보입니다. 곳곳에 코셔 인증을 받았다는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뜨르들로는 이렇게 익힙니다. 어느 광고 멘트마냥, 튀기지 않고 구워 내는 빵인데요,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 빵도 끊임없이 구워 냅니다. 분업화가 잘 되어 있어 반죽을 하는 사람도 있고, 철봉에 반죽을 감는 사람도 있고, 주문을 받는 사람까지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반죽이 다 구워지면 그냥 먹을 수도 있고,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을 안에 넣어 먹을 수도 있습니다. 기본 뜨르들로는 80코루나, 5천원 정도 합니다. 다양한 토핑을 얹을수록 가격이 높아집니다. 크기는 꽤 큰 편이라, 간식이라기에는 든든하고 식사라기에는 살짝 모자란 양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 음식의 온도감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요, 따뜻하게 구운 뜨르들로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얹어 주면 금방 녹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빨리 먹어야 하는데요, 또 이 따뜻함과 차가움이 교차하는 음식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음식은 이 뜨르들로처럼 금방 먹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면 만들기 정말 어렵다고 하죠. 온도의 대비를 즐길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었는데, 먹다 보니 각각의 재료가 서로 영향을 주어 미지근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이런 방식은 금방 먹을 수 있는 디저트에 많이 쓴다고 합니다.



잘 구워진 뜨르들로에는 설탕을 뿌렸습니다. 정말 우리나라 꽈배기의 느낌이 있죠. 계피 맛도 좀 나구요. 저희가 선택한 아이스크림과 딸기도 얹어 주었습니다. 뜨르들로는 원통에 감아 굽다 보니 가운데가 비어 있는 형태인데, 안쪽에도 딸기를 잔뜩 넣어 주었습니다.


뜨르들로는 바삭하고 쫄깃한 식감입니다. 계속 우리나라 꽈배기와 비교하게 되는데요, 꽈배기는 기름에 튀겼기 때문에 좀 더 촉촉한 감은 있지만 기름이 배어 나오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물립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기름지다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구요. 반면 뜨르들로는 열로 구웠으니 기름이 나오지 않가 담백함이 장점입니다. 오븐에 구운 치킨과 튀긴 치킨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튀기지 않아 기름의 고소하고 촉촉한 맛은 좀 덜 한 대신 좀 더 쫄깃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인 것 같아 주변에도 추천하고 싶은 맛입니다.


다만, 컵에 담아 휴지까지 둘러 주었지만 아이스크림이 금방 녹으니까 빨리 먹지 않으면 손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포함된 뜨르들로를 고르신다면 감안하셔야 하는 부분.






정말 이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대단히 맛있는 음식이다, 이렇게 표현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흔하지는 않지만 만드는 곳을 찾아볼 수 있는 것 같구요. 다만 여행지의 분위기에 걸맞는 맛있는 간식 내지는 간단한 한끼 식사로 즐기기에 좋은 음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짧은 프라하에서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프라하에서는 멋진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의 야경, 무하 박물관 등을 돌아보느라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기보다는 멋진 풍경을 찾아다닌 것 같아요. 다음 여정은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하곤 하는 체코의 작은 소도시, 체스키 크룸로프로 향합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보통 프라하에서 당일치기로 많이 방문하는 도시인데, 저희는 1박 2일로 묵었습니다.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하는 체스키 크룸로프에서의 식사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이전 05화 와인 페어링 말고, 주스 페어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