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门小吃店 in Beijing, 2024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베이징에는 두 개의 국제공항이 있습니다. 하나는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서우두는 우리 발음으로 읽으면 수도, 그러니까 Capital 공항인 셈입니다. 다른 하나는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베이징은 하나의 도시라고 하기에는 대단히 큰 면적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보니 국제공항도 두 개나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베이징의 전체 면적은 우리나라 강원도의 면적과 엇비슷하다고 하니 그 어마어마한 땅 크기도 크기고, 전체 인구는 2천만 가까이 된다고 하니 그 인구 또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정도 수준입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금성 등은 베이징 가장 중심부에 몰려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도 과거 서대문 안에 주요 시설이 모두 있었던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니 나가는 길에 왠 기계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지문을 등록하는 기계들입니다. 새삼 통제가 강한 사회주의 국가에 왔다는 것이 실감납니다. 이제 내 개인정보로 모자라 지문정보까지 중국에 남는 것인가 하는 떨떠름한 생각이 듭니다. 지문을 등록한 다음 문득 전광판을 보니, 평양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스케줄이 보입니다. 다시한번 이 곳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미묘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실제로 베이징 내에는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들도 있다고 하니까요.
우려했던 공항 입국검색은 예상보다 매우 빨리 끝났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은 아니다 보니,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공안의 태도는 별로 고압적이지 않았구요. 그냥 단순 업무를 반복하느라 지친 직장인의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다만, 우리 집 대장님의 여권 사진과 실물이 다소 다르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다른 창구로 데려갔습니다.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반간첩법인가, 하지만 우리 집 대장님은 중국어를 잘 하시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채울 때 쯤, 다시 가라고 보내주더군요. 알고 보니 옆 창구로 데려가 다른 직원에게 여권 사진하고 좀 달라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어보고, 맞는 것 같다고 하니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약간 얼렁뚱땅 넘어간 듯도 하고... 사람들 일하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입니다.
공항을 나오니 다소 칙칙한 느낌이 있습니다.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 보니 공항 치고는 층고가 좀 낮은 편입니다. 저희는 호텔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빠른 공항철도도 있었지만, 지하철 환승을 해야 하는데 지하철 역에서도 보안검색을 하는 중국 특성상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보안검색대까지 통과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환승구간들이 매우 길다는 이야기도 택시를 선택하는 데 한몫 했습니다.
공항 밖으로 나와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베이징 택시는 매우 청결하지 못하다, 베이징 택시기사들은 따로 집이 없거나 너무 멀어서 택시에서 먹고자고 한다 등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상당히 걱정했습니다. 게다가 보통 공항 택시기사들은 짐이 많으면 내려서 실어주는데, 트렁크만 딱 열어 주더군요. 직접 짐을 차에 싣고 택시에 탑승했습니다. 다행히 택시는 우리나라 택시와 다를 것 없이 평범했죠. 저희가 선택한 호텔은 한국인 후기가 거의 없었던 왕푸징의 레전데일 호텔. 마카오 자본이 투입된 호텔이라고 합니다. 4박 5일 투숙하면서 한국인은 한명도 보지 못했는데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부분이 많았던 곳입니다.
택시로 약 50분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도착 시간은 약 11시 30분 정도. 짐을 먼저 맡긴 다음 첫 여행지로 선택한 천단공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먼저 예약자명을 말하고 짐을 맡아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체크인을 도와주더군요. 아마 객실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운 좋게 얼리 체크인을 하고, 호텔에서 매일 무료로 제공해주는 생수를 챙겨 발걸음을 천단으로 옮겼습니다. 나중에 절실하게 느낀 부분입니다만, 호텔에서 매일 제공해 주던 4병의 무료 생수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베이징 날씨는 정말 타들어가는 듯한 더위라 길에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인종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땀범벅이 되어 돌아다니는데, 이 물이 없었다면 아마 탈진해 쓰러졌을 지도 모릅니다.
천단공원까지는 베이징의 우버라고 할 수 있는 '디디추싱' 을 이용했습니다. 디디추싱은 알리페이 어플에 연동되어 있어 쉽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최고의 장점은 영어로 목적지 검색이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바이두 지도에서 이화원을 검색하려고 하면, 'yi he yuan' 으로 검색해야 합니다. 하지만 알리페이에 연동된 디디추싱 지도에서는 Summer palace 로 검색할 수 있죠. 천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Temple of heaven 으로 쉽게 검색해서 도착지를 지정할 수 있었죠. 베이징의 택시나 디디추싱 요금은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입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50분 정도에 85위안, 그러니까 대략 17,000원 정도이고, 천단까지는 15분 정도 걸렸으니 더욱 저렴하게 나옵니다. 게다가 제가 방문한 시점의 베이징 날씨는 그야말로 타들어가는 듯한 더위였기 때문에, 이동하다가 지치느니 돈을 조금 더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에도 보통 여행지에서는 땀을 있는대로 흘리며 돌아다니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하는 일정이 되었습니다.
천단공원에 들어가기 전,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미리 알아보고 온 곳은 유명한 훠궈 맛집이라는 남문쇄육. 일명 '남먼솬양러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천 스타일의 훠궈가 아니라 베이징 스타일의 훠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태후가 즐겨 먹었다고도 하는데, 마라맛이 강조된 사천 스타일의 훠궈와 달리 이에 비하면 거의 맹물 수준의 육수에 양고기를 넣어 먹는다고 합니다. 마침 천단공원 남문 바로 앞에 있다고 해서 여기서 점심을 먹고, 저녁으로 유명한 베이징 덕을 먹기로 계획을 했었죠.
그런데 아뿔사, 토요일 점심이니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식사를 하려면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인기 있는 맛집이다 보니 이 더위에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시간을 기다렸다가는 오늘 일정이 모두 어긋날 것 같아, 근처의 다른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천단공원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부 간체자로 쓰여 있는 간판들을 보니, 어디를 가야 좋을지 막막했는데요, 마침 눈에 노북경 자장면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슈퍼와 식당이 연결된 곳이었는데, 타들어가는 듯한 더위에 지쳐 대충이라도 먹자 하고 들어간 곳이었죠. 들어가니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서 시원하기는 했습니다.
우리나라 김밥천국 같은 느낌이었는데, 사람이 워낙 몰리니 회전율이 엄청났는데도 합석을 하고 대기를 해야 하는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저희는 들어가자마자 앉을 수 있었구요. 목청 좋은 아주머니가 끊임없이 짜장미엔! 을 외치고 있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안쪽 주방에서는 아주머니가 짜장미엔! 을 외치면 5분도 되지 않아 짜장면을 들고 나왔죠. 시끌벅적한 우리나라 시골 식당에 간 느낌이 들어, 정신없는 와중에도 묘한 정겨움이 느껴졌습니다.
누가봐도 외국인인 저희에게도 기세 좋게 중국어로 주문하라고 하며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고, 메뉴판에는 당연하다는 듯 중국어만 쓰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충 한자도 알고 중국어도 알기 때문에, 노북경 자장면 하나와 도삭면 하나를 주문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결재는 거기 있는 QR코드로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알리페이를 쓸 때가 온거죠. 자장면과 도삭면 모두 30위안. 총 60위안이었습니다. 1위안에 200원 잡으면 대략 한 그릇에 6천 원인 셈인데요. 유명 관광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정말 금방 나왔습니다. 짜장면은 베이징 여행객들이 한번씩은 먹어보는 음식인데,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생긴 것은 우리나라 짜장면과 비슷해 보입니다. 다만, 장이 상당히 적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짜장미엔은 우리나라 짜장면에 비해 단 맛이 훨씬 적고, 대신 짠 맛이 강합니다. 굳이 따지면 된장류의 콩 맛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양파를 가득 넣고, 설탕도 넣어 달달한 우리나라의 짜장과는 여러모로 다른 맛입니다. 사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는 우리나라 짜장면이 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짜장면에서 단 맛을 덜어내고, 단 맛이 덜어진 만큼 짠 맛이 강조된다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맛이기 때문에 중국음식 특유의 맛과 향이 입맛에 맞지 않는 분들도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는 음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삭면. 도삭면은 원래 칼로 슥슥 반죽을 잘라 내어 만드는 면을 말합니다. 그래서 면이 짧은 것이 특징이죠. 이 식당의 도삭면은 정말 그렇게 만들었는지, 면의 두께도 제각각이고 약간 두꺼운 것이 마치 수제비를 생각나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도 공장에서 만든 수제비는 모두 똑같이 생겼는데, 정말 손으로 잡아 뜯어 만든 수제비는 생긴 모양도 다르고 투박하죠. 이 식당의 도삭면이 딱 그렇게 투박합니다. 면은 쫄깃쫄깃하니 두툼해서 식감마저도 수제비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양도 생각보다 많구요.
도삭면의 국물은 오향이 가득한, 살짝 얼큰한 고기국물입니다. 홍콩 차찬탱 식당에서 먹었던 면이 딱 이 국물이었는데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맛인데 제 입맛에는 정말 잘 맞았습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국물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대중화되기 어려운 맛이 아닌가 싶은데요, 면은 양이 꽤 많아 조금 남겼지만 이 국물은 남김없이 전부 다 먹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스타일의 맛을 내는 곳이 있다면, 한번쯤 가서 먹어보고 싶은 맛입니다.
식사를 하는 도중, 4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먹고 있으니 목청 좋은 아주머니가 와서 옆으로 좀 붙어 달라고 하고 다른 손님을 합석시킵니다. 왠지 모를 어색함과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홍콩에서도 두어 번 합석을 해 보기는 했지만, 날도 워낙 더운데다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여행을 왔음에도 왠지 모를 선입견이 다시금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이런 생각을 알 리 없는 중국인 커플은 우리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주문합니다.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식당에서 합석은 일상적인 일이니까요.
다 먹고 나서 일어나야 하는데, 의자가 공원 벤치마냥 가로로 길게 연결되어 있는 형태인지라 일어나려면 아무래도 옆자리 사람의 식사를 방해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엉거주춤 최대한 신경쓰이지 않게 일어나려는데, 옆사람이 식사를 하다 말고 얼른 같이 일어나 나갈 수 있도록 의자를 같이 빼 줍니다. 예상하지 못한 친절에 마음이 괜히 좋아집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정말 별 것 아닌데 말이죠. 왠지 모를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것이 괜히 미안해집니다.
역시나 정신없이 나오는 와중에, 우리 집 대장님이 목청 좋은 아주머니와 잠깐 나눈 대화 내용이 궁금하여 물어봤습니다. 역시나 나오기 어려운 구조에서 조심조심 나오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인심 좋게 천천히 가라고 인사를 건넨 모양이었습니다. 천천히 가라는 표현은 중국식 인사인데, 중국 사극에서도 후궁들이 서로 인사를 나눌 때도 쓴다고 합니다. 역시나 별 것 아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더욱 살갑게 느껴집니다.
한편, 왜 나는 당연히 중국 사람은 으레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대놓고 적기에는 민망하여 쓰기 어렵습니다만,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대략 제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을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지 않은 친절에 기분이 좋았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 정도로 친절하거나 남을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왠지 모를 미안함을 한켠에 두고, 여행의 첫 목적지인 천단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